문화 전시·공연

[이 전시] 프레드 샌드백 '오방색'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9.02 10:54

수정 2019.09.02 10:54

프레드 샌드백 '두가헌' 설치 전경 /사진=갤러리 현대
프레드 샌드백 '두가헌' 설치 전경 /사진=갤러리 현대
[파이낸셜뉴스] 우리는 늘 공간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건물의 안이 되었든 아니면 바깥의 자연이 되었든 간에 말이다. 공간 안에는 다양한 것들이 존재한다. 나무와 숲, 풀과 바람, 빛이 존재하기도 하고 책상과 의자 같은 가구 등 무생물과 고양이와 사람 등 동물도 공간 안에 머무른다. 때로는 하얀 회벽에 둘러싸여 아무 것도 없다 말할 수 있으나 그것을 외부와 구분 짓는 그 벽 또한 공간의 가장 자리에 자리잡고 있을 뿐이다.


어쩌면 공간을 인식하며, 가르고 구획짓는 것은 인간의 관념일 수 있다. 협의의 개념으로 사람들은 나무와 돌로 둘러싸인 굴과 같은 형태의 내부를 공간이라 부르나 때로는 그 정형화된 공간이 작은 실 한줄로도 갈라질 수 있다. 마치 어릴 적 짝궁과 나의 공간을 반으로 가르던 책상 한 가운데의 선처럼 말이다. 단지 하나의 실이었을 뿐인데 어디에 놓이고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어지는가에 따라 기존의 공간이 새롭게 나뉠 수 있고 안과 밖을 결정 짓는다.

프레드 샌드백 '무제' /사진=갤러리 현대
프레드 샌드백 '무제' /사진=갤러리 현대
하나의 실과 선으로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재정의를 내린 작가 '프레드 샌드백'은 자신의 인생 내내 그 앞에 놓여진 텅 빈 공간을 털실과 고무줄 하나로 마음 껏 재단했다. 미국의 전후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조각가로 불리는 그는 화가가 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듯 공간에 색색의 실을 수평과 수직 또는 대각선으로 길게 설치해 이차원과 삼차원을 오가는 기하학적 형태의 실 조각의 개념을 탄생시키며 세계 현대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다. 그는 초기에 철사, 고무줄, 밧줄 등으로 부피와 경계가 명확한 정육면체나 직육면체의 구체적인 다각형 조각을 제작했으나 점차 아크릴 실을 사용해 물리적 공간을 벗어나 무한대로 확장하는 듯한 추상적 조각으로 작품 세계의 변신을 시도했다. 샌드백의 실 조각은 윤곽만 존재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부피와 무게로 이루어져 있지만 공간 속에 또 하나의 '공간'을 만든다. 또 단순한 외양과 달리 보는 이의 움직임과 공간의 구조에 따라 시시각각 자태를 바꾸는 가변적인 성질 때문에 관객에게 매우 복합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작품과 공간, 작품과 관객, 관객과 공간, 그리고 공간과 시간 사이의 상호 작용을 강조했던 그의 예술 철학은 이후 동시대 조각가와 설치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갤러리 현대 지하 1층에 설치한 프레드 샌드백의 작품 전경 /사진=갤러리 현대
갤러리 현대 지하 1층에 설치한 프레드 샌드백의 작품 전경 /사진=갤러리 현대
그가 세상을 떠난지 16년이 지난 올 가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전시 '오방색'은 프레드 샌드백의 유족과 협업해 선보이는 첫 전시다. 전시 제목 '오방색'은 한국에서의 역사적 개인전을 기념하고 갤러리현대와 프레드 샌드백, 그의 작품과 한국 관객과의 특별한 '만남'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아 프레드 샌드백의 아내가 먼저 제안했다.

프레드 샌드백 '무제' /사진=갤러리 현대
프레드 샌드백 '무제' /사진=갤러리 현대
수많은 그의 작품 가운데에서 이번 전시는 한국의 전통적인 오방색에 속하는 청, 적, 황, 백, 흑색의 실과 고무를 활용한 조각과 드로잉 총 29점을 집중적으로 선택해 소개한다. 지하부터 지상2층의 전시장, 그리고 갤러리 옆 한옥 레스토랑 두가헌 곳곳에 그의 실조각과 드로잉, 판화 작품들이 전시됐다. 이번 전시에서 텅 비어있던 갤러리 내부의 화이트 큐브 공간은 그의 실 조각 작품에 의해 다양한 도형으로 재단됐다.
단지 갤러리의 한 구석을 색실로 이어 프레임을 만들었을 뿐인데 그 안과 밖은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진다. 이번 전시에서 관객들은 단지 그의 작품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실과 실이 만들어 낸 작품의 안과 밖을 오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별 차이 없는 같은 공간임에도 거실에서 방안으로 들어가듯 새로운 공간으로 진입하는 체험을 통해 '넒나듦'이란 무엇인가를 묵상할 수 있다. 전시는 10월 6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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