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뉴스1) 박세진 기자 =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나이인데 마음이 무너집니다. 꼭 좋은 곳에 가서 편하게 쉬었으면 좋겠습니다."
부산 광안리 공중화장실에서 누출된 황화수소를 마시고 두 달 넘게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있던 고등학생 A양(19)이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하늘나라로 떠났다.
하지만 A양 가족은 슬픔을 추스리는 와중에서도 사고 원인 규명을 위해 A양의 발인을 미루고 부검까지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30일 부산 남부경찰서와 A양 가족들에 따르면 지난 27일 오전 11시57분쯤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A양이 끝내 숨졌다.
부산의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긴 지 불과 이틀 만이다.
사고 이후 A양의 가족들은 생계를 멈추고 A양 간호에 몰두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들은 행정기관의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분노와 금전적 어려움 등 이중고를 겪어야 했다.
이날 삼촌 B씨는 "사고 원인이야 어찌됐든 어느 누구도 책임있는 태도를 보이거나, 죄송하다는 사과가 한마디 없어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그는 "상식적으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을 갑작스럽게 겪은 시민으로서 사고 이후 우리 사회의 제도가 얼마나 허술한 지 뼈저리게 느꼈다"며 부실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한 성토를 쏟아냈다.
그러면서 "억울한 사고를 당해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피해자 가족들이 나서서 사고 원인을 증명해야 하고, 만만치 않은 현실적 어려움까지 감당해야 하는 게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고가 난 곳은 부산 수영구가 민락회센터 측과 무상사용 계약을 맺고 20여년간 공중화장실로 이용해 왔다.
하지만 구가 해당시설의 '영조물 배상 공제'에는 들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조물 배상 공제'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시설물에 의해 대인·대물 피해가 발생할 경우 손해를 배상하는 제도다.
이 같은 이유 등으로 수영구는 앞서 경찰과 국과수의 수사 결과가 나와야 피해보상 등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병원 측은 황화수소 중독에 의한 무산소 뇌손상으로 숨졌다는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하지만 A양 가족은 정확한 사인 파악을 위해 이르면 내일(1일) 부검을 진행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A양의 가족들은 지난 27일부터 현재까지 A양의 발인을 미루고 빈소를 지키고 있다.
삼촌 B씨는 "법적 잘못의 유무를 떠나서 진심어린 사과를 먼저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장례식까지 미루고 부검을 하고, 재판까지 해야 돼 두 번 상처를 입었다"고 분노했다.
A양은 지난 7월29일 새벽 부산 수영구 민락동의 한 지하 공중화장실을 이용하다가 황화수소에 중독돼 쓰러진 뒤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사고는 화장실 오수처리시설에서 누출된 황화수소가 세면대 바닥 구멍을 통해 유입되면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화장실에서 측정된 황화수소 수치는 1000ppm. 유해한도 기준인 10~20ppm을 훨씬 상회하는 수치였다.
A양의 빈소는 부산 부산진구 온종합병원에 마련됐다.
한편 부산 남부경찰서는 수영구청 관계자 4명과 민락회센터 관계자 3명을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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