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국가산단 쑥대밭 될 뻔.. 울산 선박화재 어떻게 진압했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02 13:20

수정 2019.10.02 14:35

울산소방, 울산해경 신속 정확한 대응 빛나
목숨 걸고 화재와 폭발 막은 '사투'
하마터면 주거지 및 산업단지 큰 피해입을 뻔
폭발 화재 원인은 SM 중합반응 때문으로 추정
사고 발생 5일째 여전히 탱크 내 중합반응 이어져
지난 9월 28일 발생한 울산 염포부두 선박 화재 현장. 이날 선체는 총 14종 2만270t의 유해 화학물질이 실려있었다. 화염으로 인해 선체 온도가 800도까지 치솟으면서 선박 전체의 폭발로 이어질 뻔 했으나 소방당국과 해경의 신속한 대응으로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80 /사진=울산시
지난 9월 28일 발생한 울산 염포부두 선박 화재 현장. 이날 선체는 총 14종 2만270t의 유해 화학물질이 실려있었다. 화염으로 인해 선체 온도가 800도까지 치솟으면서 선박 전체의 폭발로 이어질 뻔 했으나 소방당국과 해경의 신속한 대응으로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80 /사진=울산시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0. 조용한 주말 오전이었던 지난 9월 28일 오전 10시 51분. 울산시 동구 방어동 염포부두에서 갑자기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정박 중이던 석유제품운반선 위로 높이 200m가 넘는 엄청난 불기둥이 치솟았다. 그 순간 갑판 있던 선원 몇몇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다로 뛰어들어 도망쳤다. 불을 끌 생각조차 없었다. 이들 선원들은 배에 무엇이 실려 있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 중합 반응, 화재 원인으로 지목돼
울산소방본부와 울산해경의 정확하고 신속한 대응이 아니었더라면 엄청난 대참사가 빚어질 뻔한 울산 염포부두 석유화학제품운반선 화재 사건의 첫 장면이다.
이 배에는 당시 적재 탱크 39기 중 28기에 독성물질을 함유한 화학제품 14종 2만7117t 가량이 실려 있었다. 연쇄폭발로 이어졌다면 그 피해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2일 현재까지 추정되는 화재원인은 중합(화학분자결합) 반응이다. 당시 사고선박인 '스톨트 그로이란드'호 9번 탱크에는 스티렌모노머(SM) 5245t가량이 액체 상태로 실려 있다. 중합반응으로 고열이 발생하자 SM이 기화하면서 탱크 내 압력이 차올랐고, 압력을 견디지 못한 SM 상당량이 탱크 환기구를 통해 분출되면서 폭발과 화재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탱크 윗부분에는 해치와 환기구가 밀폐된 상태였지만 잠김 상태가 약했던 환기구 쪽으로 터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초 예상됐던 탱크 폭발은 아닌 셈이다. 3차례 폭발음이 들린 것은 기화된 SM이 공기 중에 응집돼 있다가 폭발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울산시
/사진=울산시

■ 선체 온도 800도, 찬 바닷물도 무용지물
실질적인 탱크 폭발 우려는 그 뒤에 제기됐다. 화재 발생지점인 9번 탱크 옆 10번에는 SM보다 독성이 강하고 인화점이 10℃에 불과한 메탈메타크릴레이트(MMA) 889t이 실렸고, 또 12번과 13번에는 인체 흡입 시 치명적인 에틸렌디클로라이드(EDC) 1만275t이 실려 있었다. 선사 측은 온도가 계속 올라갈 경우 이들 탱크가 폭발할 수있다고 소방당국에 알렸다.

적재된 화물의 정체를 확인한 소방본부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화재가 확산되면서 당시 선체의 온도는 800℃를 넘었다.

화재진압도 시급했지만 유독물질이 가득한 이들 탱크까지 폭발로 이어질 경우 대형 참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됐다.
인구 110만 명의 울산 전역이 유해물질에 노출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또 인근에 위치한 현대미포조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KCC울산공장 등 울산항과 울산국가산업단지 산업시설도 큰 피해가 예상됐다.

울산소방본부는 화재 진압과 동시에 선체 온도를 떨어트리기 위해 45대의 소방차와 소방정 1척, 방제정 1척, 소방관 150명을 투입했다. 하지만 워낙 열기가 뜨거워 근접 진압이 어려웠고 뿌려지는 물보다는 화재로 인한 열기가 우세한 상황이었다. 사고발생 10시간이 지나서 측정된 선체 온도는 계속해 800℃ 안팎이었다.

다행히 4시간에 걸려 달려 온 부산해경의 3000t 경비함정과 울산해경 방제정, 소방정이 가세해 소화포를 쏘아대면서 진정세로 돌아섰다. 당시 화학물질과 바닷물의 반응을 차단하기 위해 전국에 분산되어 있던 소화약재인 내알콜포 약 76t이 울산으로 긴급 지원되기도 했다.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 29일 울산 염포부두 선박 화재 현장에서 선원 구조와 화재진압 활동을 벌이다 유독가스 등으로 부상을 입고 병원치료 중인 울산해경 박철수 경장을 찾아 위문하고 격려하고 있다. /사진=울산시
송철호 울산시장이 지난 29일 울산 염포부두 선박 화재 현장에서 선원 구조와 화재진압 활동을 벌이다 유독가스 등으로 부상을 입고 병원치료 중인 울산해경 박철수 경장을 찾아 위문하고 격려하고 있다. /사진=울산시

■ 울산소방과 울산해경의 사투
이에 앞서 울산해경은 화물 환적을 위해 스톨트 그로이란드호에 홋줄로 결박해 있던 싱가포르 국적인 ‘바우 달리안’호(6583t)를 분리시키는 위험 천만한 작업을 벌였다.

울산해양경찰서 임명길 서장은 "두 선박을 분리해야 선체 온도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판단했는데 당시 화염 폭발과 유독가스가 엄청나 해경 대원들의 용기가 아니었으며 투입자체가 어려웠다"며 목숨을 건 사투였다고 설명했다. 실제 선원구조와 화재진압에 나섰던 윤모 의경이 연기과다 노출 및 흡입으로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기도 했다.
불은 이후 18시간 30분 만에 29일 오전 5시 25분쯤 완전 진압됐다.

김종근 울산시소방본부장은 “탱크가 폭발했으면 배에 타고 있던 선원 25명은 물론 인근에 있던 다른 배 선원 21명, 부두작업자 5명이 모두 사망하고, 화재가 확산돼 옆 탱크까지 연쇄폭발 했다면 화재진압과 구조에 투입됐던 502명의 소방대원, 해경, 경찰이 죽거나 부상을 입는 등 대참사가 생길 뻔 했다.”고 당시 아찔했던 상황을 떠올렸다.

사고 발생 5일째인 2일 여전히 선체의 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9번 탱크에 실린 SM의 중합반응이 약하게나마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SM은 비교적 중합반응이 잘 일어나는 물질로 알려졌다. 울산소방본부는 중합반응 억제 약품을 계속 주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지난 9월 28일 오전 10시 51분쯤 울산시 동구 방어동 염포부두에 정박해 있던 케이맨제도 선적 석유제품운반선 ‘스톨트 그로이란드’호(2만5881t)에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옆에 정박 중인 싱가포르 국적인 ‘바우 달리안’호(6583t)로도 옮겨 붙으면서 2처 모두 불탔다.
이들 배에 탔던 선원 46명은 모두 구조됐으며, 이들 선박에서 일하던 하역사 노동자와 승선원, 소방관, 해경 등 모두 18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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