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당시 '전기수'라는 직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전기수는 조선 후기 책을 직업적으로 낭독했던 사람이다. 전기수는 주로 한글 소설을 읽었다. 전기수는 청중들을 울렸다가 웃겼다를 자유롭게 하는 연기력의 대가였다고 한다.
정조실록에 따르면 임경업전을 읽던 전기수가 청중에게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청중 한 명이 이야기 중 임경업 장군을 죽인 김자점에 대해 낭독하는 대목에서 이야기를 현실로 착각해 낫으로 전기수를 살해했던 것이다. 전기수의 뛰어난 연기력이 부른 불행한 사건이다. 그 후에도 전기수는 1960년대까지 존재했다. 그러나 1970년대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널리 보급되자 전기수는 점차 사라졌다.
어찌 보면 전기수는 세상의 지식을 사람들에게 구전으로 알려주는 근대판 지식 포털서비스업자라고 생각된다. 누구나 돈만 내면 원하는 이야기를 입이라는 구전 플랫폼을 통해 제공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전기수가 말하기에 따라 이야기의 줄거리와 인물의 성격은 백팔십도 달라질 수 있다.
영화 '광대들:풍문조작단'에서처럼 조선시대 광대패가 여론을 조작하는 일은 전기수들도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전기수들이 마음만 먹으면 조선판 '실검(실시간 검색어)' 1위도 뚝딱 만들어낼 법도 하다. 이처럼 전기수는 여론을 이끈다는 측면에서 네이버와 카카오로 대표되는 인터넷 포털서비스의 일부 기능과 유사하다.
다만 인터넷 포털은 매년 국정감사 때만 되면 정치권으로부터 특정 서비스 폐지나 개편 압박을 받는다는 점에서 다르다. 정치권이 민간기업의 특정 서비스에 대해 미주알고주알 '간섭'을 가하는 이유는 뭘까. 정치적 이해관계가 민감하게 얽혀서이다. 실제 야당인 한국당은 포털의 실시간 검색이 여론조작에 악용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전면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포털이 보수세력을 옹호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치권의 양면 공격에 사면초가인 쪽은 네이버와 카카오다. 오죽하면 지난 2일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의원들을 향해 "포털은 이용자들의 결과물이고 도구일 뿐"이라고 항변했을까.
국감 때마다 네이버와 카카오를 상대로 반복되는 정치권의 행태는 '제 귀에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낭독하는 전기수를 낫으로 살해한 청중'과 다를 게 뭔가. '여론 광장'인 포털이 자유로울 때 직접자유민주주의는 바르게 작동한다. 여론 광장을 입맛대로 고치려 하기 전에 광장 안에서 쏟아내는 국민의 외침을 경청하는 정치권이 되길 바란다.
hwyang@fnnews.com 양형욱 정보미디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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