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도 부사르는 이전 국립오페라단 연출작 '마농'보다 진일보한 창의적인 모습을 곳곳에서 보여줬다. 2막부터 4막을 극중극 형식으로 처리해 자칫 부산스러울 수 있는 이들 이야기에 연속성을 부여한 점, 2막은 높고 깊은 전진 무대, 3막은 좁은 실내, 4막은 실내가 야외로 이어지는 대규모 계단 무대로 구성해 공간적인 입체감을 불어넣은 점 등이 그 사례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하에 스포트라이트와 간접조명을 적절히 섞어 현실과 상상 사이 경계감을 지우려고 한 것도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 결과 주인공의 성격과 극의 내용이 동선과 장면으로 표현되는 놀라운 연극적 효과를 얻었으며, 이를 위해 무대의 장식적인 측면들을 최대한 미니멀하게 처리한 것 또한 유효했다.
특히 2막의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부모가 바이올린 제작자임과 오페라 가수임을 22개의 바이올린을 공중에 매달고 마리아 칼라스의 사진을 등장시켜 확인시킨 아이디어도 훌륭했고 마치 '수녀 안젤리카'를 연상시키듯 안토니아가 피아노 위에서 홀로 노래부르고 죽는 장면은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사랑은 인간을 위대하게 만들지만 슬픔이 인간을 더 위대하게 만든다"라는 마지막 합창 속에 모든 캐릭터들이 다시금 예술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주게 연출한 마지막 장면이 대단히 감동적이었다.
국립 오페라단과 호흡을 맞춘 지휘자 제바스티앙 랑 레싱은 느긋한 템포 가운데 적절하게 프레이징을 늘이고 줄이며 음악적 표현력에 탄력과 포인트를 주고자 고심했고, 오케스트라가 돋보이는 대목(뱃노래나 합창, 도입부)에서는 빠른 템포와 다이내믹한 음향으로 극의 흐름에 탄력을 부여했다. 가사 내용에 따라 성악가와의 음향 밸런스와 호흡을 적확하게 컨트럴해 가수를 돋보이게끔 해 주었다. 다만 다분히 독일적인 그의 해석이 전형적인 프랑스 스타일이 아니라 살짝 걱정되는 점도 있었지만 코리아 심포니의 역량을 십분 이끌어냈다.
호프만역을 맡은 장 프랑수아 보라스의 파워풀한 낭창과 1인4역을 맡은 크리스티나 파사로이우의 매혹적이고 밝으면서도 강력한 음색을 뽐냈다. 특히 파사로이우의 첨예한 연기력은 이 오페라가 언제 끝났는지 잊어버릴 정도의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했다. 국윤종의 두텁고 디테일한 목소리와 윤상아의 변화무쌍한 성격표현도 훌륭했고, 니콜라우스·뮤즈를 맡은 김정미의 연기와 가창 모두 완벽한 캐릭터도 발군. 다양한 악마역을 맡은 양준모와 희극 노래가 돋보인 위정민도 이 프로덕션의 숨은 주인공으로 칭송해 마땅하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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