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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르포] '언성히어로' 소방관들..."희생이 곧 직업"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7 15:10

수정 2019.11.07 15:10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모두가 잠든 새벽,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모두가 바쁜 오후, 누구보다 땀 흘리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는 그들을 우리 사회의 진정한 '언성 히어로(Unsung Hero·이름 없는 영웅)'라고 부른다. 낮밤이 바뀐 일과에 불면증을 달고 살고, 온몸 곳곳에 생긴 흉터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 넘기는 이들. 바로 소방관들이다.

■누구보다 바쁘게, 빠르게

구로소방서는 서울지역에서 강남소방서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사건·사고를 담당하는 소방서다.
연평균 450건의 화재가 발생하고, 3만7000여 건의 구급신고가 접수된다. 금천구를 담당하는 소방서가 없는 관계로 구로구와 금천구 두개 구에서 발생하는 사건·사고를 담당하고 있어 업무량이 폭증한다. 특히 관할 지역 내에 다수의 공장이 자리하고 있어 대형 화재도 적잖이 발생한다.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지난달 31일 서울 구로구의 구로소방서에서 야간근무를 준비하던 소방관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퇴근을 앞둔 이날 오후 5시 30분. 야간근무 소방관들의 본격적인 하루가 시작하는 시간이다. 앞선 근무조와 인수인계를 마친 뒤 저녁식사를 하면서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식사를 하다가도, 화장실에 있다가도 소방서 전역에 퍼지는 출동방송이 울리면 누구보다 빠르게 출동 준비를 마친다.

오후 8시 20분께 화재출동이라는 방송이 소방서 전체에 퍼졌다. 구로동 주택가의 한 연립주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5분. 차량에서 방화복과 방독면 등 각종 장비를 갖춘 소방관들은 현장 주변에 도착하자마자 신고가 접수된 곳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지난달 31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주택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접수한 구로소방서 소방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이동 중인 차량 내에서 방화복과 방독면 등을 착용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 사진=최재성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의 한 주택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신고를 접수한 구로소방서 소방관들이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다. 소방관들은 이동 중인 차량 내에서 방화복과 방독면 등을 착용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 사진=최재성 기자
좁은 골목에 주차된 차량들로 인해 중장비를 착용한 채로 200m 이상을 걸어 현장으로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소방관들은 물론, 주변 119안전센터의 소방관들까지 50여명이 출동했다. 정확한 현장 상황을 모르는 상태에서 언제든 전력을 다해 화재진압에 나설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태세를 유지했다.

신고가 접수된 구로동 주택가에 도착한 소방관들이 화재 신고가 접수된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고지가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주택가였던데다 불법주차된 차량들이 많아 소방차 진입이 여의치 않았다. / 사진=최재성 기자
신고가 접수된 구로동 주택가에 도착한 소방관들이 화재 신고가 접수된 현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신고지가 좁은 골목으로 이뤄진 주택가였던데다 불법주차된 차량들이 많아 소방차 진입이 여의치 않았다. / 사진=최재성 기자
다행히 불은 크지 않았다. 오후 8시 34분께 상황은 종료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화재현장 주변 상황을 면밀히 살핀 소방관들은 "큰 불이 아니어서 정말 다행이다"는 말과 함께 소방서와 각자의 안전센터로 발길을 돌렸다.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골목길을 지나 화재 현장에 도착한 구로소방서 소방관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50여명의 인력이 출동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 사진=최재성 기자
소방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골목길을 지나 화재 현장에 도착한 구로소방서 소방관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50여명의 인력이 출동해 현장을 살피고 있다. / 사진=최재성 기자
■'화마'보다 무서운 악성신고
건물을 집어삼키는 화마(火魔), 일분일초가 급한 응급사고만큼이나 소방관들을 힘들게 하는 난적이 있다. 바로 악성신고다.

일요일 낮 교회에 가기 위해 허위신고로 구급차를 부르는가 하면, 잠긴 현관문을 열기 위해 "집 안에 아이가 혼자 있다"며 구급출동을 요청하기도 한다. 답답한 마음에 "다음부턴 그러지 말아달라"고 하자 되려 "불친절한 서비스로 민원을 넣겠다"며 소방관들을 위협하는 신고자들도 있다. 그야말로 상식을 벗어난 악성신고가 소방관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이다. 한 구급대원은 "불필요한 신고로 업무가 가중되는 것도 문제지만, 정말 위급한 사고와 환자들을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어 소방관들은 답답하기만 하다"고 하소연했다.

7일 소방청에 따르면 119 구급대가 이송한 인원 중 응급하지 않은 환자는 지난해에만 60만6629명에 달했다. 이는 전체 신고의 32.2%에 달하는 수준이다. 이중 상습적으로 구급차를 찾는 이들도 2만여명에 이른다. 10회 이상 구급차를 부른 환자도 5420명으로 집계됐다.

소방기본법에 따르면 화재나 구조, 구급이 필요한 상황을 거짓으로 알릴 경우 2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소방관들이 신고의 허위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허위라고 해도 신고자가 모르쇠로 일관할 경우 처벌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조그만 이해와 관심을"
막말을 퍼붓는 주취 신고자, 허위로 신고하는 악성 민원인들로부터 고통 받는 그들이지만 오히려 변화된 시민의식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구로소방서 현장대응단 김창호 소방장은 "출동 시 도로 좌우로 차를 비켜주는 것을 보면 최근 몇년 사이 국민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된 것 같다"며 "소방 교육을 나가도 기본적인 응급처치와 소화기 사용법 등은 모두 잘 알고 계시더라"고 말했다.

서울 구로소방서 김문기 소방장(왼쪽)과 김창호 소방장. 각각 구급대원과 화재진압대원으로 활동 중인 이들은 그 누구보다 강한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 사진=최재성 기자
서울 구로소방서 김문기 소방장(왼쪽)과 김창호 소방장. 각각 구급대원과 화재진압대원으로 활동 중인 이들은 그 누구보다 강한 희생정신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 사진=최재성 기자
그럼에도 마음 속 한켠의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구로소방서 김문기 소방장은 "소방관들을 폭행하는 주취자 분들이나 욕설을 퍼붓는 신고자들을 마주할 때면 업무보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며 "소방서비스는 공공재적 성격이 강한데 자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살핀다는 생각을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어 "소방관들은 일부러 천천히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빨리 움직이고 싶은 마음에 위험천만한 주행을 감수하며 현장으로 달려간다"며 "신고자들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조금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 알아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창호 소방장은 "주변에 대한 작은 관심이 큰 사고를 막을 수 있다"며 "그런 것들이 모여 내 가족과 나아가 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주변을 살펴주시길 바란다"고 전했다.

jasonchoi@fnnews.com 최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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