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21세기 대항해시대, 혁신금융의 역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7 16:56

수정 2019.11.17 16:56

[특별기고] 21세기 대항해시대, 혁신금융의 역할
17세기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는 주식회사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평가된다. 동양의 향료·비단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지만 육로는 대규모 물품을 나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대규모 교역을 가능하게 한 것이 바닷길이었다. 그러나 해상무역은 리스크가 훨씬 컸다. 선박을 건조하고 선원을 모집하는 데 많은 초기자금이 들어가는 데다 폭풍우로 배가 좌초되거나 해적에게 약탈당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요즘 말하는 초고위험·초고수익 구조였다. 이런 모험이 가능했던 것은 여러 투자자를 모아서 위험을 공유하는 벤처형 주식회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 등 신기술기업 성장 과정은 전통기업의 성공 방정식과 전혀 다르다. 유형의 상품을 제조·판매하는 방식이 아니라 플랫폼을 선점하는 기업이 시장을 지배한다(Winner takes all). 혁신이라는 배를 타고 거친 경쟁의 파도를 넘어 성공에 이르면 막대한 수익이 약속되는, 21세기 대항해 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수익을 창출하기까지 기간도 길어지면서 종전의 자금조달 방식으로는 모험을 뒷받침하기 힘들어졌다. 대규모 혁신모험자본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우리 기업이 21세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금융부문도 패러다임을 전환해 나가고 있다. 가계금융보다 기업금융을 장려하고, 부동산담보가 아닌 미래성장성을 중시하며, 은행보다는 자본시장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고 있다.

문재인정부는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과거와 다른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다. 먼저 동산금융 활성화다. 동산은 기업이 보유한 자산 가운데 3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대출담보로 활용되는 비중은 0.05%에 불과했다. 동산금융이 활성화되면 혁신기업이 지식재산권, 매출채권 등 다양한 자산을 일괄담보로 묶어 필요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성장지원펀드를 통한 대규모 모험자본 공급이다. 정책금융을 마중물로 민간 투자자금과 매칭하는 방식으로 3년간 8조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또 펀드의 동일기업 투자한도를 폐지해 예비 유니콘기업에 대규모 투자가 가능한 구조를 만들었다. 세 번째는 신(新)예대율 도입이다. 기업대출에 인센티브를 주어 은행권 자금이 가계보다는 기업으로 더 많이 흘러가도록 유도하고 있다.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도 나타났다.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잔액은 2016년말 610조원에서 꾸준히 증가해 올해 6월말 720조원을 상회했다. 동산담보대출도 지난해말에 비해 60% 넘게 늘어 1조3000억원에 이르렀다. 성장지원펀드를 통해 지금까지 약 1조원의 투자가 집행됐으며 투자를 받은 국내 AI스타트업이 미국 나스닥 기업에 2000억원 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며 매각되기도 했다.

아직 갈 길은 멀고 해야 할 일은 많다.

이정동 교수가 '축적의 시간'에서 강조했듯이 시행착오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식과 경험의 축적이 혁신의 토대다.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혁신을 달성해 나가기 위해선 금융이 뒷받침돼야 한다. 금융권은 기술금융 활성화 등을 통해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인력과 역량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 과감한 도전을 응원하고, 실패한 시도를 용인하는 금융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정부는 적극행정과 면책제도 개편이라는 촉매제를 통해 금융권에 도전적 문화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다.
한국의 혁신기업들이 21세기 대항해 시대의 주역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혁신금융이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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