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19일(현지시간) 필리핀 방문 중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 결렬시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추측하지 않겠다"며 한국을 상대로 압박 수위를 바짝 높였다. 방위비 증액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주한미군 카드까지 꺼내들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도 지난 11일 일본 도쿄로 향하는 기내에서 주한·주일 미군 주둔 필요성과 비용에 대해 "보통의 미국인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며 한국이 증액 요구를 거부하면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검토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해 파장을 일으켰다.
미국이 한미동맹에 대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 및 안보의 핵심축"이라 강조하면도 한미동맹의 핵심인 주한미군을 방위비 분담 협상과 연계시키는 듯한 발언을 전한 것은 '판깨기 위협'에 능숙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가 전일(19일) 방위비 분담 협상 3차 회의를 예정보다 빨리 끝내고 약 한 시간 뒤에 기자회견을 열어 협상 중단을 선언한 것도 이 같은 협상 스타일과 관련이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19일 회의 시작 전에 이미 기자회견을 준비했다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5일 비공식 방한해 3박4일 간 정부와 국회, 언론계 등 인사를 만나 국내 여론을 파악한 바 있는 드하트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4시간 회의 끝에 접점 찾기가 현재로선 요원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판을 흔들려 했다는 것이다.
한미 간 최대 쟁점은 방위비 분담에 대한 성격 규정 차이다. 미국은 한국 방위와 관련된 막대한 직간접 비용을 전제하고 이중 일부를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한국 측은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환경을 제공해 연합방위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방위비 분담의 취지를 살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은 이 같은 입장을 기초로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에 새 항목을 신설해 전략자산 전개, 연합훈련·연습, 주한미군 순환배치,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주한미군 군속 및 가족 지원 등과 관련한 비용 일부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50억달러(약 5조8535억원)에 가까운 최초 분담금 요구액이 확고 불변하다는 입장은 아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측에선 내부적으로 물가상승률을 크게 넘는 정도의 인상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으며 구체적 액수는 미국 측에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이 연내 타결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미국의 요구대로라면 완전히 새로운 협정을 맺어야 한다는 한국의 주장이 나올 수 있어 이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라는 진단도 나온다. 지난 15일 발표된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는 "(양 국방장관은) 제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 만료 이전에 제11차 협상이 타결되어야 한다는 점에 공감했다"는 대목이 있다.
지난해 SCM 공동성명에는 "방위비 분담 특별조치협정의 적기 타결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돼 있다. 올해 문구는 미국 측 요구에 따라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스퍼 장관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도 "연말까지 대한민국의 분담금이 늘어난 상태로 11차 SMA를 체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SMA가 직전 협상 효력 만료 전에 체결된 것은 아니다. 6차 SMA는 2005년 4월26일 최종 합의했다. 5차 협정이 2014년 12월 말 만료된 지 한참 뒤다. 국회 비준동의는 같은 해 6월29일 이뤄졌다. 올해 적용되고 있는 10차 SMA도 지난 2월에 최종 합의됐고, 4월5일 국회를 통과했다.
최근 불거지는 한미동맹 균열 우려는 동맹을 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업주의적 안보관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렇지만 한미동맹이 흔들리면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 전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만큼 정부로선 합리적 수준에서 방위비 협상을 마무리하고 또 한미동맹을 안정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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