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제자 성폭력범으로 몰려 해임된 교수..엇갈린 하급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24 10:22

수정 2019.11.24 11:33

클릭 이 사건
대학원생 성폭력 의혹에 해임된 성균관대 교수, 불복소송 제기
1심 "피해자 진술 신빙성 있다" vs 2심 "증거상 인정 어려워"
판결 가른 '통화녹음'.."호감 가능성 배제 어려워"
'성인지 감수성' 고민한 法 "피해자 진술, 개연성은 있어야"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지난 2017년 9월 성균관대학교 성폭력위원회에 한 통의 신고가 접수됐다. 소속 학과장인 A교수로부터 성희롱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된 사건은 2016년 10월 발생했다. 대학원생 B씨는 “A교수가 식당에서 단 둘이 있을 때 ‘좋아한다’는 말을 했고, 같은 날 새벽 노래방에서 동석한 일행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 ‘자러 가자’고 말하면서 성추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이어 노래방에서 나와 함께 간 술집에서도 성희롱이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24일 법조계에 따르면 B씨의 신고 후 성균관대는 지난해 2월 A교수를 직위해제하고, 교원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 교원징계위는 ‘정황 증거 외에 직접 증거는 없었다’면서도 B씨가 제출한 자료와 전화통화 녹음, 일관된 진술 등을 근거로 A교수에 대해 성폭력 행위에 따른 '품위손상'을 이유로 지난해 4월 해임을 의결했다. 학교 측은 이를 받아들여 A교수를 해임했다.

이에 A교수는 관련 의혹을 부인하면서 B씨와는 사건 직후 한 달간 사귄 사이였다며 학교 측의 해임처분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1심 "피해자 진술 신빙성 있어..처분 적법"
1심은 B씨와 참고인들의 진술, 제출된 통화파일 등을 토대로 A교수의 성폭력 행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B씨는 전체적으로 A교수의 언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고, 이는 참고인들의 진술과 A교수와의 통화내용 등과도 대체로 부합한다”며 “B씨의 진술은 대체로 신빙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사건발생 후) 두 사람 간 통화내용의 전체적인 맥락에 비춰 이들은 서로 어느 정도의 호감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그러한 사정만으로 해임처분의 본질적인 부분이나 핵심적인 이유인 B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볼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B씨로부터 통화녹음파일을 제공받지 못해 방어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는 A교수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립학교법상 징계사실 인정의 근거가 된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고, 이를 징계대상자에게 제공할 경우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절차상 하자를 인정하지 않았다.

■2심 "성폭력 인정 안 돼"..해임처분 무효
2심인 서울고법 민사38부(박영재 부장판사)는 사건을 달리 판단했다. 쟁점이 된 부분은 사건발생 다음날 A교수와 B씨 간 통화내용이었다.

당시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B씨는 A교수에게 “교수님이 연락 한 번도 안하고, 나한데 호감이 있었던 표시도 한 번도 없었는데” “어제 잘 들어갔냐고 연락 한 번은” “교수님은 감정보다 소문을 더 신경쓰시는 거죠?” 등을 말했다.

또 A교수가 “상대방이 나를 호감 갖는다고 내가 뭐하고 이런 스타일이 아니다”고 하자 B씨는 “근데 나 한데는 표현을 했는데, 표현을 한 게 나만 한 거지 교수님이 한건 아니다”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대화내용을 들어 사건 당시에 두 사람이 서로 호감을 확인한 상황이 있었을 가능성을 지목했다. 대화 내용을 보면 성추행 등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여기에 △B씨가 제출한 통화녹음파일은 여러 개로 나눠져 대화 내용·맥락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는 점 △B씨가 원본 녹음파일을 제출하지 않은 점 △B씨는 증인소환을 받고도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점 등이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이를 종합해 A교수의 성폭력 의혹을 전제로 한 해임처분을 무효로 인정하고, A교수가 해임된 지난해 5월부터 복직할 때까지 월 940만원 상당의 급여를 산정해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성인지 감수성' 고민한 법원
판결문에는 재판부가 이 같은 판단을 내리기 까지 고민한 흔적이 역력했다. 특히, 최근 법원의 판단에서 필수적 요소로 주목받는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 진술의 증명력을 배척해선 안된다고 지적하면서도 '성인지 감수성'에만 의존해 판결을 내려선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심 재판부는 “법원이 성폭행이나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 사회의 가해자 중심 문화와 인식·구조 등으로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알리고 문제를 삼는 과정에서 오히려 부정적인 여론이 불이익한 처우 및 신분 노출의 피해 등을 입기도 해 온 등에 비춰보면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다만 재판부는 “징계사유에 대한 증명책임은 여전히 그 처분의 적법성을 주장하는 피고에게 있다”며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증명은 '추호의 의혹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지만,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정도에는 이르러야 한다”고 판시했다.

#성폭력 #성인지 감수성 #해임처분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