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소방국가직화의 근거로 시·도별 재정격차를 꼽는다. 재정여건이 열악해 소방에 쓸 돈이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내부를 들여다보면 '시·도지사의 책임 방기'라는 숨겨진 난맥상이 드러난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돈을 써도 티가 나지 않아 소방에 예산을 투입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도(道)의 소방본부장을 지낸 소방고위공무원은 "중앙정부가 소방인력 충원에 쓰일 돈을 지방예산에 편성해 줘도 도지사가 다른 용도로 쓰겠다고 결정하면 그만이다. 인력 문제로 아주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통계는 이 발언을 뒷받침해준다. 행정안전부는 2015년 이 도에 105명의 기준인건비를 편성했지만 증원은 61명에 그쳤다. 2016년에는 64명의 증원에 쓰일 돈을 편성해줬으나 단 1명만 증원했다.
결국 2017년 12월 이 지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해 29명이 안타까운 목숨을 잃고 40명이 다쳤다. 초동 대처 실패로 2층에서만 20명이 사망했다. 당시 이 도의 현장 소방인력은 법정기준 2596명에서 42.9%나 부족한 1483명뿐이었다. 10명이 해야 할 일을 6명이 하고 있던 셈이다.
지자체 업무를 경험한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소방국가직화에 대해 "소방업무는 책임만 크고 생색 내긴 어렵다. 이번 국가직 전환으로 시·도지사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이라고 평했다.
문재인정부는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공약했다. 중앙의 권한·재정을 대폭 지방에 넘기고 있다. 하지만 과연 전국 17개 시·도지사 모두가 넘겨받은 권한·재정을 책임 있게 집행할 준비가 됐는지는 의문이다. 소방국가직화를 보면 그렇다
소방국가직화라는 표현은 틀렸다. 일부 시·도지사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소방 지방자치의 실패라고 해야 옳다.
eco@fnnews.com 안태호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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