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쭈물하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자고 나면 매일 세상 곳곳에 어이없는 일들이 터져 나온다.
본인의 위선과 거짓말이 드러나도 사과는커녕 정의의 사도마냥 고개를 치켜들고, 사람을 죽여 한강에 던지고도 오히려 죽을 짓을 했다고 세상을 향해 큰소리를 내지른다.
선거법 위반으로 처벌 중에 있는 자가 이 방송 저 방송 정치프로에 출연해 궤변과 요설로 국민을 가르친다. 그런 범법자를 방송에 불러내는 PD들도 개념 없는 인간이긴 마찬가지다.
자기편 행동은 무조건 정의인 세상이 왔다.
자기편에 불리한 판정이면 무조건 불공정한 세상이 왔다. 구보씨는 이런 개념 없는 세상이 도래하리라 예측했다.
결혼하고도 남편을 오빠라 부를 때부터 알아봤다. 식당 종업원을 모두 이모, 언니라 부를 때부터 알아봤다. 명찰을 보고 정숙씨, 정애씨 이름 부르면 될 걸 혈연·지연·학연도 없는 사람에게 친족 호칭을 갖다 붙일 때부터 알아봤다.
세상이 이렇게 개념 없이 돌아가니 풍자적 건배사까지 유행한다. 적반하장-적당한 반주는 하느님도 권장한다. 주경야독- 낮에는 가볍게 밤에는 독하게. 인사불성-인간을 사랑하라, 불경 성경도 말했다. 남존여비- 남자의 존재이유는 여자의 비위를 맞추는 데 있다.
개념은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신경조직 같은 것이다. 개념이 명쾌해야 소통이 정확하고 원활해서 사회가 유지된다.
가령 탄식(歎息)은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는 호흡을 이르는 개념이다. 여기에서 파생한 감탄(感歎)은 우리가 뭔가를 보고 크게 느끼는 개념이다. 탄복(歎服)은 감탄을 넘어 상대의 식견과 품성에 승복(承服)할 때 쓰는 개념이다. 경탄(敬歎)은 존경까지 품은 놀라는 개념이고, 찬탄(讚歎)은 상대방을 예찬하는 개념이다. 개탄(慨歎)은 기대에 못 미쳐 분하고 걱정스러워 나오는 한숨이고, 비탄(悲歎)은 몹시 슬퍼서 내뱉는 한숨이다. 한탄(恨歎)은 타인이나 본인에 대한 깊은 원한과 진한 회한(悔恨)에서 나오는 한숨이다.
개념이 고정불변은 아니다. 변환되고 확장되기도 한다. 또 진화되어 파생개념이 생기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쓰는 '남사친' 같은 신조어가 예다. 하지만 개념의 본질을 왜곡하거나 변질시켜선 안된다. 개념이 망가지면서 세상이 뒤죽박죽된다.
구보 PD가 볼 때 지금 세상이 그렇다. 정의도 공정도 상식도 망가지고 있는 중이다.
세상은 개념을 부수는 자들이 득세해서 궤변과 요설로 선동 중이다. 곡학아세와 혹세무민으로 세상을 엉망진창, 백공천창(百孔千瘡)으로 만드는 중이다. 오늘도 자기편을 위해 신문에선 펜으로, 방송에선 마이크로, 유튜브에선 혀끝으로 개념을 망가뜨리는 중이다.
그런 자에 현혹된 개념 없는 자들이 무리를 지어 세상 이곳저곳에서 싸움과 분열을 부추기는 중이다.
그래서 힘없는 구보씨, 오늘도 버나드 쇼처럼 우물쭈물 세상 종말이 온다고 중얼거리는 중이다.
이응진 경기대 한국드라마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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