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들 덕에 무인 판매는 이상 무.. "자부심 느낀다"는 반응도
[파이낸셜뉴스] ※편집자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당신의 '양심'은 어디쯤에 있나요?
# 지난주 방문했던 서울의 한 빵집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여느 빵집처럼 당연히 빵은 있었지만 계산대를 지켜야 할 직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무인판매' 중이라는 안내문에는 다양한 결제 수단과 계산 방법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이곳은 하루 24시간 중 약 절반을 무인으로 운영하는 '무인 빵집' 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품과 돈이 오가는 일인데, 무인 운영이라니 걱정부터 됐습니다. 하지만 각종 후기를 찾아보니 이것은 기우였습니다. 이 빵집이 자신 있게 무인 판매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 무인판매 이유 제각각이지만.. 양심 지키는 손님 덕에 가능한 일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작은 빵집 '곳간'.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이 빵집은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약 11시간가량 무인으로 운영됩니다. 퇴근 후 늦은 시간에 방문하는 젊은 손님들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가게를 비울 때 빵을 사고자 하는 손님들을 위한 판매 방법을 고민하던 중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도입한 것입니다. 계산대에는 카드 결제기와 현금 상자 그리고 제로페이 QR코드까지 다양한 결제 수단이 마련돼 있습니다. 손님은 원하는 빵을 고른 후 가장 편한 방식으로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면 됩니다.
곳간의 전세계 사장은 "2017년 2월 무인 판매를 처음 도입한 이후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약 2년간 이를 잘 유지하고 있다"면서 "판매 금액을 세세하게 대조해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빵을 만들다 보면 수익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데, 지금까지 그 범위에서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CCTV가 없던 시절 현금이 없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로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네요.
서울 이촌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에 위치한 '비엔디베이커리'도 무인 빵집입니다. 늦은 오후 방문한 이 빵집에도 역시 계산대를 지키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인판매 중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반대편 진열대에는 손님들이 지불하고 간 현금과 결제 방법이 설명된 안내문, QR코드 등이 놓여 있었습니다.
비엔디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함경훈 목사는 "건강한 빵을 위해 좋은 원료를 사용하고 일부 재료는 직접 만들다 보니 인건비를 줄이는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무인 판매 도입 취지를 밝혔습니다. 함 목사는 "처음에는 뚜껑이 있는 현금 상자를 뒀는데, 돈을 거슬러가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뚜껑을 없앴다"라며 "외국인 손님과 초등학생이 돈을 훔쳐 간 사례가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큰 사고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돈이 계속 없어졌다면 장사 자체가 유지가 되지 않았을 거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 "정의로운 일 했다는 자부심 들어요".. 무인판매가 고마운 손님들
무인판매로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생각보다 재밌는 현상을 많이 목격한다고 합니다. 곳간을 방문했던 한 손님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면 내가 마치 정의로운 사람이 된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옳은 행동을 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 정도로 양심을 잘 지킨다며, 소위 말하는 '국뽕'을 느낀다는 손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전하던 전 사장은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손님들에게 고맙다"라며 기뻐했습니다.
셀프 카드 결제에 익숙하지 않은 중년·노년층 손님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이 또한 손님들 스스로 극복했습니다. 전 사장은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 계산대 앞에 섰을 때 결제 방법을 아는 젊은 손님이 손수 도와주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렇게 결제 방법을 익힌 어르신이 다음번에 가게에 찾아와 또 다른 어르신께 결제 방법을 가르쳐주더라"라고 전했습니다.
빵집의 확장을 거쳐 건강한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함 목사는 앞으로 만들 새로운 지점에서도 무인판매 기조를 유지할 계획입니다. 최소한의 경비로 가게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일부 고객을 배려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함 목사는 "마케팅 방법 중 손님과 직접 대면하지 않는 비대면 마케팅(언택트 마케팅·Untact marketing)이 있다"면서 "주인이 있거나 말을 걸면 거부감을 느끼는 손님들을 위한 것이다. 주로 젊은 층이다. 가게를 찾는 분들에게 일부러 말을 걸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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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fnnews.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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