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양심을 믿어요".. 그 빵집이 '무인'으로 운영되는 이유 [당신의 양심]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4 10:00

수정 2019.12.14 09:59

손님들 덕에 무인 판매는 이상 무.. "자부심 느낀다"는 반응도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뉴스] ※편집자주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 당신의 '양심'은 어디쯤에 있나요?

# 지난주 방문했던 서울의 한 빵집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여느 빵집처럼 당연히 빵은 있었지만 계산대를 지켜야 할 직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죠. '무인판매' 중이라는 안내문에는 다양한 결제 수단과 계산 방법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알고보니 이곳은 하루 24시간 중 약 절반을 무인으로 운영하는 '무인 빵집' 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상품과 돈이 오가는 일인데, 무인 운영이라니 걱정부터 됐습니다. 하지만 각종 후기를 찾아보니 이것은 기우였습니다.
이 빵집이 자신 있게 무인 판매를 할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졌습니다.

■ 무인판매 이유 제각각이지만.. 양심 지키는 손님 덕에 가능한 일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작은 빵집 '곳간'.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이 빵집은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아침 8시까지 약 11시간가량 무인으로 운영됩니다. 퇴근 후 늦은 시간에 방문하는 젊은 손님들과 부득이한 사정으로 가게를 비울 때 빵을 사고자 하는 손님들을 위한 판매 방법을 고민하던 중 가장 원시적인 방법을 도입한 것입니다. 계산대에는 카드 결제기와 현금 상자 그리고 제로페이 QR코드까지 다양한 결제 수단이 마련돼 있습니다. 손님은 원하는 빵을 고른 후 가장 편한 방식으로 계산을 하고 가게를 나서면 됩니다.

다양한 결제수단이 있는 계산대 / 사진=이혜진 기자
다양한 결제수단이 있는 계산대 / 사진=이혜진 기자

곳간의 전세계 사장은 "2017년 2월 무인 판매를 처음 도입한 이후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약 2년간 이를 잘 유지하고 있다"면서 "판매 금액을 세세하게 대조해보지는 않는다. 하지만 빵을 만들다 보면 수익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데, 지금까지 그 범위에서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CCTV가 없던 시절 현금이 없어지는 사고가 발생한 적이 있지만, 그 이후로 별다른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았다네요.

서울 이촌동의 한 아파트 단지 상가 내에 위치한 '비엔디베이커리'도 무인 빵집입니다. 늦은 오후 방문한 이 빵집에도 역시 계산대를 지키는 직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인판매 중입니다'라고 적힌 팻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반대편 진열대에는 손님들이 지불하고 간 현금과 결제 방법이 설명된 안내문, QR코드 등이 놓여 있었습니다.

무인판매를 알리는 팻말 / 사진=이혜진 기자
무인판매를 알리는 팻말 / 사진=이혜진 기자

비엔디베이커리를 운영하는 함경훈 목사는 "건강한 빵을 위해 좋은 원료를 사용하고 일부 재료는 직접 만들다 보니 인건비를 줄이는 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무인 판매 도입 취지를 밝혔습니다. 함 목사는 "처음에는 뚜껑이 있는 현금 상자를 뒀는데, 돈을 거슬러가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다. 지금은 뚜껑을 없앴다"라며 "외국인 손님과 초등학생이 돈을 훔쳐 간 사례가 있었지만 이를 제외하고는 큰 사고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만약 돈이 계속 없어졌다면 장사 자체가 유지가 되지 않았을 거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 "정의로운 일 했다는 자부심 들어요".. 무인판매가 고마운 손님들
무인판매로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생각보다 재밌는 현상을 많이 목격한다고 합니다. 곳간을 방문했던 한 손님은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은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하면 내가 마치 정의로운 사람이 된 것 같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옳은 행동을 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이 정도로 양심을 잘 지킨다며, 소위 말하는 '국뽕'을 느낀다는 손님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얘기를 전하던 전 사장은 "손님들에게 고맙다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손님들에게 고맙다"라며 기뻐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셀프 카드 결제에 익숙하지 않은 중년·노년층 손님들이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이 또한 손님들 스스로 극복했습니다. 전 사장은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 계산대 앞에 섰을 때 결제 방법을 아는 젊은 손님이 손수 도와주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렇게 결제 방법을 익힌 어르신이 다음번에 가게에 찾아와 또 다른 어르신께 결제 방법을 가르쳐주더라"라고 전했습니다.

무인판매 중인 빵집의 전경 / 사진=비엔디베이커리 제공
무인판매 중인 빵집의 전경 / 사진=비엔디베이커리 제공

빵집의 확장을 거쳐 건강한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함 목사는 앞으로 만들 새로운 지점에서도 무인판매 기조를 유지할 계획입니다. 최소한의 경비로 가게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일부 고객을 배려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함 목사는 "마케팅 방법 중 손님과 직접 대면하지 않는 비대면 마케팅(언택트 마케팅·Untact marketing)이 있다"면서 "주인이 있거나 말을 걸면 거부감을 느끼는 손님들을 위한 것이다. 주로 젊은 층이다.
가게를 찾는 분들에게 일부러 말을 걸지 않으려고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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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set@fnnews.com 이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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