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생활고에 잇따른 비극.."가난 증명 없어져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6 14:27

수정 2019.12.16 14:27

[여전한 복지 사각](상) 
지난 11월 3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다가구주택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뉴스1
지난 11월 3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의 다가구주택에서 일가족 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 지난달 19일 인천시 계양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A씨(49·여)를 포함한 일가족 4명이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수년 전 남편과 이혼 후 자녀 둘을 데리고 살았다. A씨가 실직한 후 3개월 간 긴급복지 지원금으로 매달 95만원씩 받았지만 이후 월 24만원 주거급여가 소득의 전부였다.

긴급지원이 끝난 뒤 생계 급여를 받을 수 있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이 문제였다. 주민센터에서 부양의무자인 전 남편 등으로부터 금융정보 동의서를 받아와야 한다고 전해 들은 A씨는 생계 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하는 저소득층의 비극이 잇따르고 있다. 이들이 복지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안전망 확충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무원 96% "복지 사각지대 존재"
1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복지 분야 사각지대와 부정수급에 대한 복지서비스 공급자의 인식 비교'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복지 담당 공무원 96.2%가 복지 사각지대가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50개 시·군·구청 복지담당 300명, 100개 읍면동 주민센터 200명, LH(한국토지주택공사) 주거급여사무소 200명 등 총 700명의 지역 복지업무 담당자 43.2%가 사각지대가 '많다'(많다 40.1%, 매우 많다 3.1%), 56.0%가 '조금 있다'고 답했다.

복지 공무원들은 신청을 통해서만 복지 혜택을 얻을 수 있는 현행 제도의 문제를 이유로 들었다. 사각지대 발생 배경을 두고 '대상자가 신청하지 않아서'라는 이들의 응답이 45.7%로 가장 많았다.

복지 대상자가 복지 제도를 신청하지 않은 사례는 인천의 A씨 뿐만 아니다. 지난 8월 서울 관악구에서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나 발견된 한모씨와 6살 아들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 하자 주민센터에서 이혼한 남편과의 '이혼 확인서'를 떼오라고 말했다. 한씨는 중국 국적의 남편과의 이혼 확인서를 떼올 수 없어 참극을 당했다.

지난달 2일 사망한 성북 네 모녀도 복지 지원 대상에서 빠졌지만 긴급복지 지원을 신청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렀다.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해야"
정부는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다음 해인 2015년부터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작동하고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시스템은 공공요금이나 임대주택 관리비 체납 등을 분석해 위기가구를 발견하지만 A씨 가족, 탈북 모자, 그리고 성북 네 모녀의 '위기'를 감지하지 못했다.

2015년부터 운영된 복지 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은 이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공공요금이나 공동주택 관리비 체납 등 정보를 분석해 위기가구를 발굴하는 이 시스템은 올해부터 수집되는 정보 수가 15개 기관 29종에서 17개 기관 32종으로 확대됐으나 별다른 소용이 없었다.

정부는 탈북모자가 사망한 이후 재개발 임대주택에 대한 월세 체납 정보를 수집 대상에 포함하고 AI 등을 도입해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정보 수집이 아닌 예산 확충 및 부양 의무자 폐지 등 제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정부는 정보량이 부족해 복지 사각지대가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위기 가구 중에서도 정부가 실질적인 지원에 나서는 경우는 5%가량에 불과하다"며 "복지 예산의 확충과 인천 일가족 사례처럼 부양의무자 기준의 근본적인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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