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류석우 기자,정윤미 기자 = 한국 사회에서 국가적인 방관 속에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 살해)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를 규탄하기 위한 집회가 28일 혜화역 앞에서 열렸다.
'페미사이드 철폐 시위'는 이날 오후 서울 혜화역 마로니에 공원에서 집회를 열고 페미사이드 현상을 강력하게 규탄한다며 이를 방관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혜화역 앞에 여성들로만 이뤄진 집회가 열린 것은 지난해 이후 약 1년여 만이다. 지난해 혜화역 앞에서는 불법촬영 사건 수사가 성별에 따라 편파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며 이를 규탄하는 시위가 5월부터 12월까지 모두 6차례 진행됐다.
'폐미사이드 철폐 시위'는 지난해 열렸던 '불편한 용기' 집회와 마찬가지로 익명의 개인들 모임을 표방한다. 이날 집회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생물학적 여성만 참여가 가능하도록 제한됐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검은색 마스크나 흰색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채 '당신이 가해자다', 'STOP PEMICIDE(페미사이드를 멈춰라)' 등의 피켓을 들고 입장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본 시위 참여자와 발언자 등 모두가 익명"이라며 "참여자는 약 1500여명으로 추산된다"고 설명했다.
오후 2시부터 집회를 시작한 이들은 최근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고(故) 구하라씨(28)와 설리씨(본명 최진리·25)를 언급하며 '사회적 타살'로 규정하고, 명백히 여성이기 때문에 많은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통해 "지난 두 달간 한국에서는 두 명의 여성이 또다시 보호받지 못한 채 사회적 타살을 당했다"며 "두 여성은 악플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행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두 명의 자매들은 여성이기 때문에 죽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남성 카르텔을 이루며 남성중심적 사고관을 퍼뜨리는 남성들 바로 당신들"이라며 "입으로만 평화를 외치면서 권력은 내려놓지 않고, 여성을 성적 물화하고, 자신들의 불이익은 여성을 탓하는 바로 당신이 가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Δ여성이기 때문에 발생하는 폭력을 언어로 정의하고 법제화할 것 Δ가부장폭력, 이성 관계에서의 폭력에 대한 특별법을 제정할 것 Δ여성이기에 가해지는 범죄의 원인이 성별 권력 차이인 것을 인지하고 합당한 처벌과 피해자의 회복을 지원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것 등이다.
더불어 한국 남성들을 향해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하는 분위기를 조장할 것을 멈추라"며 "자신의 언행을 모두 반성하며 여성의 입을 막지 말고 여성들이 말할 때는 입 다물고 들어라"고 덧붙였다.
이날 집회는 참가자들이 한 명씩 단상에 나와 주최 측이 준비해온 '여성대상 살인사건 묻지마가 웬 말이냐', '누가 봐도 여혐범죄 묻지마로 덮지마라' 등의 구호를 선창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개별 규탄 발언은 없었다.
또 '네모의 꿈'과 '아빠와 크레파스' 노래 가사를 남성중심적인 한국 사회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개사해 함께 부르기도 했다.
앞서 '폐미사이드 철폐 시위'는 구씨가 숨진 채 발견된 후 이튿날인 지난달 25일 인터넷 카페를 개설한 뒤 운영진을 꾸리고 시위를 준비해 왔다.
이들은 사전에 배포한 자료를 통해 "2013년에서 2018년 사이에 언론에 보도된 사건 중 배우자나 애인 등 가까운 사이의 남성에게 살해된 여성의 수는 1156명이고,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한국 강력범죄 피해자 87.7%가 여성"이라며 "한국이 치안이 좋은 나라라고 하지만 대한민국 남성에 한정돼 있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에서는 불법촬영, 리벤지포르노(당사자의 동의나 인지 없이 배포되는 음란물),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기사가 매일같이 나오고 있다"며 "이는 피해자의 성별이 여성이라는 점에 기반한 혐오범죄"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