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대기업 역차별 규제만 188건… 혁신성장, 출발선이 달랐다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1 17:04

수정 2020.01.01 17:15

기업 옥죄는 정책과 반기업정서
지난해 국내 복귀 기업 10곳으로
같은기간 미국 886개와 90배 차
법인세 축소 세계적 추세 반대로
국내선 3.3% 올려 투자 21兆 ↓
주52시간 근로·최저인금 인상에
유럽상공회의소 "혼란 그 이상"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좌초
잠재적 불법 사업장 리스크 여전
대기업 역차별 규제만 188건… 혁신성장, 출발선이 달랐다
한국 경제가 1%대 만성적 저성장 위기의 경고등이 커졌다. 경기부진, 소비심리 악화, 가계부채 증가, 미·중 무역분쟁 등 나라 안팎의 악재들이 해소되지 못하면서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축소 분위기는 새해에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업들을 옥죄는 주요 경제정책과 규제들은 개선의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법인세 인상, 편법 논란이 불거진 각종 시행령 규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등은 한국을 여전히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오명 속에 가둬두고 있다.

■법인세 발목에 돌아오지 않는 기업들

1일 재계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리쇼어링·reshoring)는 연평균 10.4개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3년 12월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지원에 관한 법률'(유턴법)이 시행됐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반면 미국 기업의 유턴 촉진기관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10년 95개에 불과했던 유턴기업 수는 지난해 886개로 9배가량 급증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회귀 기업이 10곳인 걸 감안하면 90배 가까운 차이를 보인다.


두 나라 모두 국내 회귀 기업에 대한 지원정책을 마련했지만, 실질적 규제개선에서 명암이 엇갈린 요인이 크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지난해 정부가 '유턴기업종합지원대책'을 발표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유턴법 개정안이 현재 국회 계류상태"라며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완화 등의 체질 변화를 이뤄야 다양한 방식의 국내투자가 활발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세제 측면에서 가장 부담이 큰 법인세만 보더라도 한·미 간 차이가 극명하다.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말 연방법인세율을 35%에서 21%로 대폭 인하했다. 반면 한국은 현 정부 들어 법인세 최고세율을 24.2%에서 27.5%로 3.3% 인상했다.

법인세 인상은 고용감소, 가계소득 감소, 저성장의 주요 요인이라는 실증적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이 미국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의 영향분석 기법을 활용해 분석한 결과 법인세 3.3% 인상 시 자본의 사용자 비중이 3.65% 증가해 총 국내투자가 20조9000억원(2018년 기준) 감소할 것으로 파악됐다. 또 우리나라의 해외투자는 6조7000억원 증가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는 3조6000억원 감소하는 등 자본의 해외 이탈규모도 10조3000억원으로 추산됐다.

대기업 역차별 규제만 188건… 혁신성장, 출발선이 달랐다
■시행령으로 옥죄기…편법 논란

국회 입법이 아닌 하위법령 개정을 통한 기업 규제 강화도 뚜렷해지고 있다. 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경우 최근 6년간 시행령 61건, 시행규칙 및 고시·지침 등 행정규칙 219건 등 총 280건의 하위법령을 개정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규제강화가 81건으로 규제완화(32건)의 2.5배에 달한다.

최근 법무부와 금융당국이 추진하는 상법과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도 편법 논란이 불거졌다. 경영계는 "정부가 까다로운 국회 입법 대신 시행령 개정으로 민간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금융위원회가 추진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은 이른바 '5%룰' 완화를 담고 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5%룰은 투자자가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이후 1% 이상 지분변동이 있는 경우 5일 이내에 보유목적과 변동사항을 상세히 보고하고 공시토록 한 규정이다. 금융위가 5% 이상 지분 보유에 따른 보고의무 등을 완화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적극적 경영참여의 길을 터주려는 것으로 경영계는 받아들이고 있다. 상법 시행령 개정안은 상장사의 사외이사 재직기간을 최대 6년으로 제한,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과 상법 시행령의 개정안들은 모두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과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며 "시행령들은 삼권분립의 헌법정신에 어긋나고 국가 법체계를 뒤흔드는 발상"이라고 맹비판했다.

■노동시장 경직에 대기업 역차별…투자환경 역주행

국내 진출한 해외 기업들은 최대 투자 걸림돌로 노동정책을 꼽고 있다. 주52시간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은 국내 기업뿐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의 한국 투자마저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크리스토프 하이더 주한 유럽상공회의소(ECCK) 사무총장은 "노동정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기업들이 변화에 적응할 시간도 없이 급격히 인상된 최저임금은 혼란 그 이상"이라고 했다. 제임스 김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회장은 "노동시장 경직성은 기업이 신규 고용을 주저하게 만드는 주요한 원인"이라며 "기업이 쉽게 인적 자원을 고용하고 개인 역량에 따라 70~80세까지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미국의 임의고용 원칙(At-will employment)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계가 20대 국회에서 입법 마지노선으로 촉구한 유일한 근로시간 단축 보완입법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도 좌초돼 기업들은 '잠재적 불법사업장'의 리스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는 역차별적 규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현행 법령상 기업 규모 기준으로 적용하는 '대기업차별규제'는 47개 법령에 총 188개에 달하는 실정이다. 금융지주사법 41개(21.8%)과 공정거래법 36개(19.1%)로 두 법이 전체 대기업 규제의 40%에 달했다.
유환익 한경연 혁신성장실장은 "대기업에 대한 차별규제는 과거 폐쇄적 경제체제를 전제로 도입된 것이 대다수"라며 "글로벌화된 경제환경에 부합하고 융복합을 통한 신산업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차별규제를 제로베이스에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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