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의 이라크 미군 기지 미사일 공습에도 불구하고 확전은 피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면서 긴장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항공사들은 막대한 비용 상승에도 불구하고 대체항로 운항에 나서는 등 신중한 모습이다.
항로 변경으로 비행시간이 길어지면서 항공사들은 더 많은 연료를 싣기 위해 항공기 무게를 줄여야 하고, 이때문에 탑승객 수도 감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적은 승객에 더 많은 연료가 들면서 항공사들이 심각한 비용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됐다.
8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항공사들은 울며겨자 먹기 식으로 운항취소나 항로 우회 등으로 미·이란 갈등의 불똥을 피해가고 있다.
미 연방항공청(FAA)이 미 항공기들의 이 지역 운항을 전면 중단시키고, 유럽항공안전청(EASA) 역시 이라크 상공 운항을 자제할 것을 항공사들에 요청하고 나서면서 항공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지난해 6월부터 FAA가 이 지역 운항 자제를 권고한 뒤 상당수 항공사들이 운항을 중단한 상태여서 이날 조처가 실질적인 파급효과는 크게 없지만 전세계 항공사들에 안전지침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영향력은 작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란·이라크 상공과 걸프지역 상공을 운항하지 않거나 우회하는 이번 조처는 하루 항공 이용객 가운데 최대 1만5000명에 영향을 줄 것으로 파악됐다.
또 항로 우회로 운항시간은 평균 30~90분 늘어나게 되고, 이때문에 경영난에 시달리는 항공사들에 심각한 비용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됐다.
자칫 항공사들의 줄도산도 우려된다.
두바이의 항공 컨설턴트 마크 마틴은 "전쟁 상황에서는 첫번째 희생자가 늘 항공운송"이라면서 걸프전과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항공사들이 상당수 파산한 적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미국과 이란간 갈등 고조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바싹 긴장하던 항공사들은 인도된지 3년반밖에 되지 않은 우크라이나의 보잉 737-800 민항기가 이날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이륙한지 몇분 되지도 않아 추락해 승객 167명과 승무원 9명 전원이 사망한 뒤 서둘러 조처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란 인근의 카자흐스탄 항공사 에어아스타나와 SCAT가 우회 또는 이란 상공 운항 금지 검토에 나섰고, 폴란드 국적 항공사 PLL LOT는 앞서 4일 발빠르게 이란 상공을 우회하도록 항로를 변경했다.
에어프랑스와 네덜란드 KLM은 이란과 이라크 상공 운항을 무기한 중단하기로 했다.
또 독일 루프트한자와 산하 자회사 2곳이 이라크 운항을 취소했다.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공백을 빠르게 메우고 있는 러시아도 운항중단 대열에 동참했다.
러시아 항공안전기구인 로자비아치아는 이날 모든 러시아 항공사들에 이란·이라크·걸프만·오만만 상공 운항을 자제할 것을 권고했다.
러시아 최대 민항사 S7은 이 조처 뒤 시베리아의 노보시비르스크와 두바이를 연결하는 주2회 항공편의 항로를 변경했다.
장거리 항공이 많은 아시아 태평양 항공사들도 심각한 비용상승에도 불구하고 항로 변경에 나서고 있다.
호주 콴타스 항공은 현재 이란·이라크 상공을 통과하는 런던과 호주 퍼스 노선 항로를 바꿨다. 우회항로로 인해 운항시간은 40~50분 더 길어지게 됐다.
말레이시아 항공, 싱가포르 항공도 이란 상공을 우회하는 항로로 변경했다.
중동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저가항공사 플라이두바이가 두바이-바그다드 운항을 중단했다. UAE 2위 항공사 에티하드항공은 정기항공편을 계속 운항하되 이를 불안해하는 승객들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UAE 등 걸프지역 국가들의 제재로 고립돼 있는 카타르의 카타르항공은 계속해서 사우디·UAE·바레인 영공을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이란·이라크 상공 통과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고 FT는 전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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