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 16년간 대통령을 맡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마지막 임기를 4년 앞두고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고 의회 권력을 키우는 개헌을 제안했다. 서방 언론들은 그가 여론을 감안해 연임을 포기하는 대신 의회나 기타 자문기구 수장을 맡아 계속해서 러시아를 통치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CNN 등 외신들에 따르면 그는 15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1993년에 채택된 헌법을 언급하고 "러시아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필요하고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일련의 헌법 개정 문제를 논의에 부치자"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7가지 개헌 항목을 국민투표에 맡기자며 그 중 하나로 3연임 제한 문제를 꼽았다. 러시아 헌법 81조 3항에 따르면 같은 인물은 계속해서 2기 이상 대통령직을 연임할 수 없다. 지난 2000년 제 3대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되어 4대, 6대 대통령을 역임한 푸틴 대통령은 3연임 문제를 피하기 위해 2008년~ 2012년 자발적으로 총리직을 맡았다. 그는 지난 2018년 대선에서 승리해 2024년까지 7대 대통령을 맡을 예정이다. 푸틴 대통령은 3연임 규정에 대해 "해당 규정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문제가 원칙적인 것은 아니지만 나도 동의한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들은 푸틴 대통령이 해당 조항에서 '계속해서'라는 구절을 삭제, 연임과 상관없이 무조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을 최대 2번만 할 수 있게끔 하고 자신처럼 꼼수를 쓰지 못하게 막는 데 동의했다고 풀이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의 영토가 광활하고 민족 구성이 복잡해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하다면서도 의회 권한을 강화해 하원이 총리와 부총리, 장관 등을 임명하고 대통령이 하원의 후보를 거부하지 못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야권 지도자인 알렉세이 나발니는 푸틴의 연설 직후 자신의 트위터에 "푸틴이 2024년에 권좌에서 물러난다고 하는 사람은 바보거나 사기꾼이거나 아니면 둘 다이다"라고 적었다. CNN은 푸틴 대통령이 퇴임 이후 2008년처럼 다시 총리직을 맡거나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위원회 수장으로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중국의 덩샤오핑처럼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최고지도자 형식으로 권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러시아 싱크탱크인 정치기술센터(CPT)의 알렉세이 마카르킨 부소장은 푸틴 대통령의 후임이 "푸틴만큼 지배적인 역할을 맡지 못할 것"이라며 "후계자 결정이 딱히 중대한 결정이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2008년 당시 푸틴 총리의 '대통령' 역할을 수행하는 등 푸틴 정권의 2인자였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는 국정 연설 몇시간 뒤 자신을 포함해 모든 내각 인사가 총사퇴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2017년부터 부패 혐의로 권력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그는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도 권력을 놓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면서 후계자 자리를 노릴 수 없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미하일 미슈스틴 연방국세청장을 후임 총리로 지명하고 메드베데프 총리에게는 신설될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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