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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배우 이병헌… "권력 2인자의 심리, 매력적이었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20 17:02

수정 2020.01.20 17:02

22일 개봉 영화 '남산의 부장들'
10·26 벌어진 1979년 배경
대통령에 총겨눈 중정부장役
"예민하게 머리칼 만지는 행동
자료속 김재규 모습서 따와"
아카데미상 투표권 가진 회원
"올해는 기생충 수상 힘보탤것"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누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을 연기한 이병헌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대통령에게 총구를 겨누는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을 연기한 이병헌
온 가족이 모이는 명절의 금기사항 중 하나가 정치 얘기다. 하지만 올 설에는 이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2일 개봉하는 설영화 '남산의 부장들'은 한국 근현대사의 변곡점이 된 10·26사태를 전격 다룬다. 극중 국가원수에게 총구를 겨눈 중앙정보부장 '김규평'을 연기한 이병헌에게 "박근혜정권 때 출연 제의를 받았는데, 껄끄럽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이병헌은 "예민한 이야기라 어느 정도 고민의 시간이 있었다"며 "만약 정치적 견해가 담겼거나 누군가를 영웅시한 이야기라면 출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병헌을 움직인 것은 이야기의 힘과 인물의 심리였다. 그는 "작품을 결정할 때 정치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기보다 이야기의 힘과 인물의 심리에 집중한다"며 "김규평의 심리는 한번 연기해보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고 했다.

'남산의 부장들'은 중앙정보부 18년을 통해 박정희정권을 조명한 김충식 기자의 동명의 르포가 원작이다. 방대한 분량의 원작 중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기까지 40일간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에서 실존 인물들은 김규평(실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김형욱), 경호실장 곽상천(차지철)으로 호명된다.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박용각(곽도원 분)이 미 하원 청문회에 출석해 박정희정권의 치부를 폭로하는 장면에서 시작해 흔들리는 권력의 2인자 김규평(이병헌 분), 박정희 대통령(이성민 분)의 신임을 얻게 된 곽상천(이희준 분)의 과열된 '충성 경쟁'을 담담히 좇는다.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과 이병헌의 두 번째 협업이며, 전작이 뜨겁게 질주했다면 이번 영화는 냉정하게 나아간다. 세련된 스파이영화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미국·프랑스를 오가는 로케이션 덕분에 이국적 영상까지 담았다.

"정치적 성향이 강한 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 이병헌은 감독과 출연을 논의할 당시 "어느 한쪽의 시각에 치우지지 말고, 역사적 미스터리는 영화에서도 미스터리로 남아야 한다"는데 공감했단다. 출연을 결정한 뒤로는 "실존인물과의 싱크로율"을 논의했다. "외모적으로 얼마나 비슷하게 할지 고민했다. 감독이 '(실존 인물과) 이름을 다르게 했으며 인물의 심리가 중요하니 목소리나 말투를 굳이 따라하지 말자'고 해 헤어스타일과 안경처럼 상징적 소품만 차용했다."

극중 이병헌은 이희준이 연기한 경호실장과 대립각을 세운다. 경호실장이 감정적 캐릭터라면 김규평은 이성적인 인물로 감정을 꾹꾹 누르다가 가끔 폭발한다. 둘이 마구잡이로 주먹다짐을 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이병헌은 "법정 자료 영상을 보다가 머리를 예민하게 쓸어넘기는 (김재규의) 모습에 주목했다"며 "경호실장과 몸싸움할 때 헝클어진 머리부터 황급히 정리한다든지, 신경이 곤두섰을 때 이 동작을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규평은 왜 총을 쏘았을까. 영화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언급할 뿐 딱히 어느 하나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그럼 이병헌은 어떤 마음으로 연기했을까. 그는 "왜 그랬던 거지? 영화가 끝난 뒤에 관객들에게서 그 질문이 나와야 하며, 우리 영화가 그 이유를 규정지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감독과도 이야기했지만 이유는 복합적이지 않았을까. 김규평이 헬기를 타고 부마항쟁을 내려다보는 장면에서 여러 사람의 보이스오버가 지나간다. 개인의 욕망부터 대의까지 다양하다."

'남산의 부장들'은 배우들의 밀도 높은 연기도 볼거리다. 박정희 대통령을 연기한 이성민부터 곽도원, 이희준까지 '연기 선수'들의 연기 향연이 관객의 긴장감을 쥐락펴락한다. 이병헌이 출연하는 '백두산'이 아직도 상영 중이지만, 두 작품 속 이병헌의 캐릭터는 겹치는 구석이 전혀 없다. '남산의 부장들' 속 이병헌은 특히 미세한 표정연기가 압권이다.

그는 감정 연기의 비결로 "계산해 연기하면 컴퓨터"라며 "상황 속에서 느끼는 감정을 내 안에 갖고 있으면 전달된다. 스크린이 비현실적으로 크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을 관객들이 캐치할 수 있다"고 했다. "가장 중요한 건 배우로서, 늘 감정이 말랑말랑해야 한다. 그래야 시나리오의 미묘한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느끼면서 표현할 수 있다. 뭘 구체적으로 훈련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이병헌은 아카데미상 투표권이 있는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이다. 그는 올해 '기생충'에 힘을 보태려 처음으로 투표를 할 생각이다. 봉준호 감독과도 한번 작업해야 하지 않느냐고 하자 그는 "성사시켜 달라"며 웃었다.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이야기가 좋다면 영화의 크기는 상관없다.
데뷔 감독이든 유명 감독이든." 이병헌은 올해도 바쁘다. 좀 쉬어야겠다 싶다가도 연기하고 싶은 캐릭터를 만나면 또 덥석 출연을 수락한단다.
차기작은 송강호와 함께 출연하는 한재림 감독의 영화 '비상선언'과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히어(HERE)'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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