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강도 높은 규제가 이어지면서 중산층과 30대 사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2년 동안 19여 차례나 되는 부동산 규제책을 내놓으면서도 집값을 잡지 못하고 있지만 청와대에서는 구정 이후 또 다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기 때문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 대통령은 “부동산 대책이 시효를 다했다고 생각되면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끊임없이 내놓겠다”고 말했다. 실제 문 대통령 발언 이후 청와대 관계자들이 부동산 허가제, 6억원 이하 아파트 규제 등 추가 대책에 대한 언급을 거듭하면서 시장 단속에 나섰다.
이처럼 청와대가 본격적으로 나서자 부동산 시장은 급격히 냉각하고 있다. 특히 강남 부동산 시장은 호가가 2~3억원 이상 빠지면서 마치 한겨울에 찬물을 끼얹은 듯 냉랭한 분위기다. 서초구 반포동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64㎡의 경우 시세가 50억∼52억원 선인데 이보다 3억∼4억원가량 싼 48억∼49억원에 급매물이 나오고 있다. 송파구 잠실 리센츠 전용면적 84㎡는 최근 19억원에 한 건 팔린 뒤 현재 18억∼18억5천만원짜리 급매물이 나와 있다. 대책 발표 전 20억원 이상 호가하던 금액에서 2억원 이상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분위기에도 오히려 수요자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크다. 정부가 기본적인 공급과 수요에 대한 계획이 없이 정치와 이념으로만 부동산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특히 교육 제도나 일자리에 대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강남에 대한 수요는 치솟을 수 밖에 없는데 무작정 강남 집값을 때려잡는다고 집값이 잡힐 수 없다는 분석이다.
실제 강남의 학군과 인프라를 누리고 싶은 중산층은 15억원 이상 초고가아파트의 대출을 아예 막아 강남 진입 자체가 막혔다. 그나마 살던 집을 세주고, 자녀 학교 등의 문제로 강남에 전세를 사는 수요자 역시 9억원 초과 주택 보유자의 시중은행 전세자금 대출이 전면 금지되면서 강남 거주 가체가 막힐까봐 걱정이 많다.
강북에 거주하고 있는 40대 박 모씨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책임지는 고위공직자들은 모두 강남에 거주하면서 자식들에게 최고의 교육을 시켜 좋은 대학을 보내고 있다”면서 “하지만 서민들은 힘들게 돈을 모아 간신히 강남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이제는 이마저도 힘들게 됐다”고 토로했다.
30대들의 불만은 더 크다. 30대들의 경우 집을 사고 싶어도 서울 집값이 폭등하면서 매수 타이밍을 놓쳤고, 이제와서 구입을 하려고 해도 9억원 이상 아파트의 LTV가 20% 수준으로 크게 줄어들면서 매매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청약 시장을 노리려고 해도 가점이 부족해 서울은 꿈도 꾸지 못하고 있고,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맞벌이로 인해 부부합산 소득에서 걸린다. 그나마 수도권 지역으로 눈을 돌려 집을 사려고 하지만 정부 규제가 심해지면서 그 마저도 가격이 떨어지거나 하락할까봐 사지 못하고 있다. 간신히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자금을 마련한다는 신조어)까지 동원해 기존 주택을 매입한 30대는 정부 규제로 집값이 떨어질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자녀 2명을 키우고 있는 30대 최모씨는 “아이들이 크면서 자연스럽게 학군도 좋고 살기 좋은 지역에 집을 사서 거주하고 싶은 마음에 집을 샀는데 규제는 강해지고 있고 정부는 집값을 떨어뜨리겠다고 한다”면서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집을 사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이 들어 산 것인데 왜 집값을 못 잡는 정부를 비판하지 않고 힘들게 집을 사는 30대를 욕하는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규제가 지속되고 있고 추가 대책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부동산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고 있다. 또 정부가 최고 수위의 부동산 규제라며 내놓은 9·13대책을 내놓았지만 대책 발표 6개월 만에 또 다시 집값이 최고가를 경신하면서 사실상 12·16 대책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규제에 대한 학습효과와 부동산 상승에 대한 심리가 이어지면서 또 다시 집값이 오를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실제 15억원 초과 주택과 9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규제가 심해지면서 상승폭이 둔화되거나 호가가 하락하고 있지만 막상 이번 12·16대책의 규제 대상에서 비껴간 9억원 이하 아파트값은 상승폭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 부동산 리브온에 따르면 추가 대출 규제가 없는 9억원 이하 서울 아파트값은 2주 전 0.26%에서 지난주에는 0.28%로 오름폭이 확대됐다. 대유평지구의 ‘화서역 파크푸르지오’의 호가는 웃돈이 4억7000만원이 붙으면서 이미 84㎡기준으로 11억원에서 일부 세대는 12억원을 넘어서고 있다.
청약 시장 쏠림 현상도 커지고 있다. GS건설이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서 분양한 '개포 프레지던스자이'의 청약가점 최고점은 무려 79점을 기록했다. 수도권의 비규제지역, 특히 무순위로 청약에 참여할 수 있는 부적격 물량이나 미계약 물량도 수요자가 쏠린다. 최근 두산건설이 인천시 부평구에 공급한 '부평 두산위브 더파크'의 무순위 청약경쟁률은 무려 1만1907대 1에 달했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독불장군식의 규제 일변도 정책으로 집값 폭등의 원인을 제공했다”면서 “근본적인 원인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있음에도 정부는 일부 투기 세력과 이전 정부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고 말했다.
kmk@fnnews.com 김민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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