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면서도 여유로워 보였다. 올해로 시니어투어에 데뷔하는 '큰 형님'의 달관의 경지를 느낄 수 있는 짧고 강렬한 메시지였다. '한국산 탱크' 최경주(50·SK텔레콤)가 아들뻘인 후배들 앞에서 임팩트 강한 플레이를 펼치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최경주는 31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인근 스코츠데일의 TPC 스코츠데일(파71)에서 열린 미국프로골프(PGA)투어 피닉스오픈(총상금 730만달러) 첫날 1라운드에서 보기없이 버디만 5개를 골라 잡아 5언더파 66타를 쳐 공동 8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만 10타를 줄여 단독 선두에 자리한 윈덤 클락(미국)과는 5타 차이다.
이 대회는 '골프 해방구'로 불린다. 갤러리의 음주와 고성방가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경기력이 변변치 않은 선수는 야유를 피할 수 없지만 '굿샷'에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가 이어진다. 그런 대회장 분위기는 산전수전 다 경험한 베테랑 최경주에게는 이른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다름없다.
그런 현장 분위기에 힘입어서였을까, 최경주는 근래 보기 드문 경기력을 보였다. 평균 비거리 284.3야드를 기록한 드라이버샷의 페어웨이 안착률이 92.86%로 전체 1위에 오른 것이 퍼펙트 경기를 펼친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여기에 파온 실패시 파세이브 성공율을 나타내는 스크램블링이 100% 전체 1위에 오른 것도 한 몫을 했다.
최경주는 "올 한해를 대비해 재단 골프 꿈나무들과 혹독한 동계 전지훈련을 했다. 그래서 내심 기대가 된다"며 "3개월 뒤면 시니어투어 데뷔 자격을 갖게 된다. 따라서 코스 내에서 뿐만 아니라 코스 밖에서도 가급적 즐기려고 한다. 스스로를 뭔가에 얽매이게 해서 좋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골프도 마찬가지다"고 말했다.
안병훈(28·CJ대한통운)도 보기없이 6타를 줄여 공동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정확한 샷감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린 원동력이다. 그는 드라이버샷 페어웨이 안착률 71.43%, 아이언 그린 적중률 88.89%를 앞세워 타수를 줄여 나갔다. 임성재(22)와 강성훈(32·이상 CJ대한통운)도 선전했다. 임성재는 최경주함께 공동 8위, 강성훈은 4언더파 67타를 쳐 공동 13위에 자리했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