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뉴스1) 허단비 기자 = "그래도 거기에 희망을 걸었는데…."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사라진 가족을 찾지 못한 5·18행방불명자 가족 강정심씨(66)는 2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광주 북구 문흥동 옛 광주교도소에서 5·18행불자 유골을 찾기 위한 추가 발굴 작업이 아무 성과 없이 종료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뒤였다.
강씨는 연신 "아쉽다", "참말로 아쉽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강씨의 당숙 이철우씨는 80년 5월18일 집을 나선 후 소식이 끊겼다. 온 가족이 이씨를 찾아다녔지만, 어디에서도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모두 '5·18 때 어디로 끌려갔을 것'이라고만 추측했다.
이씨는 아버지의 사촌 동생으로 강씨와 5촌 당숙지간 이지만 강씨는 그를 줄곧 작은아버지라고 불렀다.
"당시만 해도 대가족 사회였어. 한 지붕 아래서 같이 밥 먹고 이불 덮고 자면 가족이제. 촌수가 멀다고 가족이 아닌가 그럼? 우리 아부지가 죽을 때까지 사촌 동생 꼭 찾아야 헌다고 참말로 걱정을 많이 혔는디... 아직도 못 찾아서 내가 참 죄송하네..."
강씨 가족은 당시 군 장교로 복무하던 시동생이 5·18가족이라는 이유로 군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까 가족 실종 신고도 한동안 하지 못했다.
"80년 어느 날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찾아와서 작은아버지 이름을 대면서 '이철우'아냐고 물어. 그땐 무서워서 우리 다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랬제. 참말로 찾고 싶었는데 모른다고 해버렸어..."
강씨는 80년 5월 이후 40년 가까이 숨죽여 지냈다고 했다. 그는 "그나마 지금은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그땐 그런 분위기였제. 지금이야 이렇게 5.18 이야기를 맘 놓고 하지. 5·18관련법이 없을 땐 우린 '폭도'였제. 사람 취급도 안 혔어. 다 빨갱이라 혔지... 그때 작은아버지를 안다고 하면 잡혀갈 수도 있었어. 그래서 가족이 사라졌는데 찾아달라고도 어디 말도 못 하고 숨죽이고 한동안 살았어. 죄지은 것도 없는디..."
강씨는 5·18행불자 가족으로 지낸 지난 세월이 '너무너무' 힘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차라리 시신이라도 있으면, 어디서 어떻게 사라졌는지라도 알면 모진 소리도 안 듣고 맘이라도 편하지. 어디로 사라졌는지도 모르는 가족들 찾아달라고 낮이고 밤이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식하고 농성하고 별짓 다 했어."
5·18행불자 가족들은 다른 5·18 희생자 가족들보다 보상을 받을 길도 순탄치 않았다. 행불자 가족이라는 걸 입증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7년 518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후 90년에 1차 보상이 이뤄졌다.
신청자 2693명 중 인정된 이는 2219명이었다. 이 중 행불자 가족들은 단 39명이었다.
2차, 3차 보상도 상황은 비슷했다. 93년도 2차 보상자 1832명 중 행불자 가족은 46명, 98년도 3차 보상자 464명 중 행불자 가족은 17명뿐이었다.
해마다 행불자 가족들의 보상 신청 건수는 줄어들었고 보상자도 그만큼 적었다. 강씨는 "징하기도 징해서 다들 질려버린 것"이라고 한탄했다.
"생계도 다 내버리고 뛰어들어 싸웠는데 자꾸 증거를 대고 증인을 데려오라고 해. 징하게도 힘들제. 5·18이 뉴스에 나올 때마다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도 당하면서 그렇게 지내왔는데..."
5·18보상은 2015년 7차를 끝으로 8차 보상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8차 보상을 위해서는 5·18 보상법 개정이 선행돼야 한다. 5·18보상법에 명시된 보상자 신청 기간 등 일부를 수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5·18 행불자 가족들은 수년에 한 번씩 5·18보상법 개정을 위해서도 싸워왔다. 지루하고도 반복된 싸움이었다.
지난해 12월19일 옛 광주교도소 신원 미상의 유골 수십여 구가 발견되면서 강씨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했다.
지난달 28일부터 5·18행불자를 찾기 위한 추가 발굴이 시작됐고 5일간의 발굴 작업은 결국 아무 소득 없이 마무리됐다.
군 기록에 따르면 약 28구의 시신이 교도소 중심으로 암매장됐다는 보고가 있지만 11구만 발견됐고 17구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마에 깊은 주름이 잡힌 강씨는 40년 전 24살의 강정심으로 했던 다짐을 다시금 꺼냈다.
"이제 5.18 40주년이니깐 다시 한번 힘을 내봐야지. 죽기 전에는 가족을 찾고 죽어야 할 것 아녀. 인자는 우리 가족 좀 찾아달라고 말할 수도 있고. 빨갱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도 없으니, 죽기 전에 우리 작은아버지 찾고 눈 감아야 우리 아버지도 볼 것 같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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