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둘이 합쳐 연기인생 115년… 여전히 무대가 고프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3 16:40

수정 2020.02.03 16:40

아버지의 죽음 앞둔 한가족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서
부부로 다시 만난 신구·손숙
손 "요즘 웰다잉에 꽂혀 있다
죽음이 남의일 같지 않아"
신 "늘 무대에 대한 갈증 느껴
대사없이 앉아있어도 행복할것"
연극배우 신구(오른쪽)와 손숙은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부부를 연기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배우 신구(오른쪽)와 손숙은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부부를 연기한다. 신시컴퍼니 제공
연기 인생 도합 115년의 배우 신구(84)와 손숙(76)에게 "아직도 무대에 오르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손숙이 "아직도?"라며 살짝 발끈했다. 그는 "우린 현역"이라며 "이순재 선생과 함께 우리끼리는 방탄노년단이라고 한다"고 웃었다. 2013년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초연한 두 노장배우가 4년 만에 네 번째 호흡을 맞춘다.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한 가족의 일상을 담담하게 묘사한 이 작품은 두 노장의 인생을 담은 연기로 "살냄새 나는 연극"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손숙은 앞서 "늘 다시 한 번 해보기를 바랐던 작품의 무대에 다시 서게 돼 행복하다"고 밝혔다. 신구 역시 "참 힘든 공연인데, 할 때마다 관객들이 좋아해줘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최근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신구는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로 "손숙과 같이 공연하면 즐겁고, 또 반갑다"고 말했다. 손숙은 신구의 말에 웃음과 함께 "그것밖에 안돼?"라고 답한 뒤 "둘이 국립극단에서 함께 활동하다 관두고 이후 20년 만에 이 작품을 통해 재회했다"고 회상했다.
"(신구 선생의) 연극을 대하는 태도가 존경스럽다. 제일 좋아하는 상대 배우다. 이번엔 투병 중인 역할이라 살을 빼고 계신다. 눈빛만 봐도 서로의 연기를 알 정도로 신뢰가 생긴다."

손숙은 "늘 그렇듯 리딩연습 20일 하고, 우리끼리 (무대에) 선다고 하는데, 움직이면서 40일 연습한 뒤 관객을 만난다"고 설명했다. "리딩이 중요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리딩을 잘 안하는데, 연극의 기본은 대화다. 신구 선생이 놀라운 게 (무대에) 서면 대본을 놓는다. 대본을 다 외우니까, 젊은 친구들이 아주 긴장한다." 신구는 "그게 습관이 됐다"며 "우린 전문 직업인이니까 대본은 받으면 연습 전까지 다 외울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작가 김광탁의 자전적 이야기다. 간암 말기의 실향민 아버지가 고통으로 간성혼수 상태에서 '굿을 해달라'고 한 것을 계기로 글을 썼다. '아파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말하지 않는 우리시대의 아버지'들을 위한 위로의 굿 한판이 되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을 담았다.

손숙은 "작가가 아버지의 임종을 보고 쓴 작품이라 아주 실감난다"며 "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편을 바라보는 할머니의 마음이 현실적이다. 힘드니까 구박도 했다가 아버지에게 완벽하지 못한 자식들을 바라보는 복잡한 심경도 있다"고 했다. 극적인 사건이 없기에 연기하기는 꽤나 까다롭다. "일상적 대사뿐이다. 집중을 안 하면 자칫 산으로 갈수 있는 섬세한 작품"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이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연극이 아니라 마치 현실과 같다. "우리도 나이가 들었으니까 남의 일 같지 않다. (죽음은) 곧 닥칠 일인데,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요즘 웰다잉에 꽂혀 있다.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이번이 벌써 네 번째 무대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찾아내 보완하는 재미가 있다. 신구는 "내가 지녔던 물건도 다시 대하면 새롭게 느껴지지 않냐"며 "발견의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손숙은 할머니 홍매의 또 다른 마음을 알게 됐단다. "아버지 임종이 코앞인데 미국에 사는 큰 아들이 당장 못 온다고 한다. 예전에는 큰아들에 대한 섭섭함이 적었는데 이번에는 그게 크게 다가왔다." 신구는 마지막까지 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아버지의 본능이 유난히 마음에 와닿는다고 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삶의 욕망은 본능적이다. 아들에게 네가 날 살려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하는데, 그 마음이 애절하다."

평생 무대에 서온 배우답게 두 사람은 연극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표했다. 신구는 "늙으니까 다른 매체에서 안 불러줘서 여기 우리가 좋아하는 연극을 하고 있다"며 웃었다. "마음은 늘 연극만 하고 살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그게 힘들었다"며 연극판의 힘든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60년 연극인생에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었을까? 손숙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쉬를 꼽았다. "옛날에 섹시하지 않은 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상처받은 적이 있다. 이후 1인극 '셜리 발렌타인'에서 수영복을 입었는데, 희열이 컸다. 블랑쉬는 이젠 지난 꿈이다." 신구는 '햄릿'을 꼽았다. "햄릿을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안 왔다. 내 모양새가 햄릿과 동떨어져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은 또 가능한 오래 무대에 설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도 했다. "대사를 안줘도 좋다. 무대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행복할 거 같다. 무대에 대한 갈증, 사랑이 늘 있다.
" 마지막으로 연극 홍보성 질문을 던졌다. 관객들이 이번 작품을 봐야 하는 이유는? 신구는 무심히 한마디 던졌다.
"안보면 (관객) 손해다." 오는 14일부터 3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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