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회사' 카카오M에 편입돼 제2의 도약
올해 라인업, 공연계에서 가장 주목
워호스 내한공연·리지·제이미·더 그레이트 코멧, 국내 초연
직접 겪는 것만 삶이란 법이 있나. 무대 위에서 긁히고 깨지고 상처 받는 인물들을 보고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중요한 순간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개성 강한 뮤지컬들을 제작한 곳은 쇼노트. 중견 공연 제작사지만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를 명민하게 풀어내며 공연 마니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최근 한남동에서 만난 쇼노트 송한샘(46) 프로듀서는 "우리의 공연 제작은 결국 편견에 대한 도전이자 싸움"이라면서 "그 대상은 정치적일 수 있고, 젠더적일 수 있으며, 권력에 대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직, 생활고 등의 벼랑 끝에 몰린 가장 '케이시'가 생계를 위해 드랙퀸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린 연극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도 편견을 깬 예다. 쇼노트가 '알앤제이'에 이어 흥행시킨 이 연극에서 케이시는 세상의 시선으로 본인을 재단한 압박을 털어낸다. 드랙퀸을 직업으로 삼고 흥겨운 음악에 몸을 싣고 자유로워진다.
그의 아내 '조'는 드랙퀸으로 변신한 남편을 보고 당황도 하고 화도 내지만, 끝내 그를 이해하고 드랙퀸 쇼의 스태프가 돼 남편의 삶을 적극 응원한다.
대학로 유니플렉스 2관에서 공연 중으로 웃음, 감동, 통찰 등의 삼박자가 맞물리며 흥행에도 성공, 공연을 16일까지 연장했다. 이번이 국내 초연인데 연착륙에 성공했다.
그런데 송 프로듀서는 결국 중요한 것은 "드랙퀸이라는 직업을 보는 시선이 대중들 사이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지는가가 중요하다"고 짚었다.
"드랙퀸을 바라보는 시선이 소위 말하는 일반 사람들을 바라보는 기준과 동일한 잣대를 가지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거죠. 가장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드랙퀸을 선택하는 과정이 극화될 만큼 특별한 일인가에 대해 생각을 하는 거예요. 이런 부분이 자유로워지면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을 올릴 필요가 없다고 봐요."
쇼노트가 지난해 말 내로라하는 종합 콘텐츠 기업 카카오M의 계열로 편입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업계가 들썩였다. 사실 콘텐츠 회사라면 탐낼 만한 제작사다. 2005년부터 뮤지컬과 연극뿐 아니라 콘서트, 팬미팅, 전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라인업을 구축했다.
YB, 이소라, 몬스타엑스, 포미닛 등의 콘서트, 김제동의 토크콘서트 등도 제작했다. 2017년 그룹 '세븐틴' 월드투어에 이어 지난해에는 뮤지컬 '헤드윅'의 대만 투어를 진행했다. 김영욱 쇼노트 대표는 최근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가 뽑은 '올해의 프로듀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올해 라인업이 특기할 만하다. 어느 대형 컴퍼니 이상이다. 영국 국립극장의 '워호스' 월드투어와 '리지', '제이미', '더 그레이트 코멧' 등 쟁쟁한 신작들이 라인업에 포함됐다.
'워호스'는 초연 13년 만인 7월 한국에 상륙한다. 세계적 작가 마이클 모퍼고의 동명 소설을 영국 국립극장이 경이로운 무대예술로 변모시킨 작품이다. 2007년 초연부터 지난해 5월까지 세계 11개국 97개 도시에서 8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쇼노트에 앞서 국내 많은 대형 컴퍼니가 이 작품의 한국 공연을 위해 영국 국립극장과 접촉해왔다.
송 프로듀서는 "초연한지 13년이 지나 우리나라에 온 것이 너무 늦게 느껴지고 신기할 정도"라면서 "시대와 공간을 넘어 감동을 주는 보편적 인류애가 넘치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워호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기마대 군마로 차출된 말 '조이'와 소년 '알버트'의 모험과 우정을 그린다. 전쟁으로 인한 아픔과 고통, 화해와 평화를 담은 보편적인 이야기다.
송 프로듀서는 "참혹함 속에서도 살아남는 우정을 그려요. 한반도가 나눠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죠.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시대에 인간 중심이 아닌, 사람과 동물의 진한 교감도 보여줍니다.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나무로 만들어진 실물 크기의 말 퍼핏(인형)과 퍼핏을 연기하는 퍼핏티어들의 정교한 연기로 무대 위에 말이 실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퍼핏을 디자인한 '핸드스프링 퍼핏 컴퍼니'는 남아프리카에 기반을 두고 30년 넘게 수많은 디자이너와 연기자, 기술자 양성과 예술적 기반을 제공한다.
송 프로듀서는 "'여백의 미학'이 느껴지는 연출 기법인데, 동양식의 붓 터치도 영상으로 선보여요. 무대는 산수화에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답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1890년대 일어난 미국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살인사건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탈코르셋' 흐름에 있는 여성 4인 록 뮤지컬 '리지'(4월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드랙퀸 퍼포머'라는 꿈을 꾸는 고등학생을 타이틀로 내세운 뮤지컬로 웨스트엔드를 휩쓴 뮤지컬 '제이미'(7월 LG아트센터)의 한국 초연도 기대작인데 두 작품은 소위 말하는 '쇼노트다운' 뮤지컬들이다.
역시 뮤지컬 안에 편견을 깨는 메시지가 똬리를 틀고 있다. 송 프로듀서는 '리지'에 관해 "'여자 아이'에게 여자라는 굴레를 씌운 어른들이 편견과 오만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이야기에요. 현재 여성 서사를 이야기하고 양성 평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러한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하죠"라고 짚었다.
'제이미'는 훌륭한 작품임에도 쇼노트 내부에서는 고민이 많았던 작품이다. '헤드윅'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에 이어 또 드랙퀸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이면, 기획의도와 달리 회사의 색깔이 다소 치우쳐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제이미'를 택한 이유는 "메시지를 차치하고서라도 음악과 안무의 세련됨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무대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혹이 됐어요.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할 만한 K팝적인 요소도 있고 우리 공연계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라고 했다.
'제이미'에서 '드랙퀸'은 일종의 상징이다. "화려한 가발을 쓰지 않아도,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너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면 드랙퀸이 될 수 있다"는 뮤지컬 속 메시지는 결국 자신에게 아름다움은 무엇인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한 교실에 유럽 사람은 물론 아시아계, 아랍계가 다양하게 섞여 있어 다름을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은 다양성 사회도 자연스레 반영한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를 원작으로 삼은 이머시브 뮤지컬로 '더 그레이트 코멧'(9월 유니버설아트센터)은 쇼노트가 브로드웨이 오리지널 프로덕션에 투자한 작품이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을 없애는 형태로 세계적 공연계 대세인 '이머시브' 흐름에 있는 작품이다. 일렉트로 팝 오페라로 정의된 음악의 에너지 역시 뜨겁다.
쇼노트는 한국에서도 브로드웨이와 마찬가지로 객석 일부를 무대에 설치, 배우들이 관객 사이에 스며들게 한다. 유니버설아트센터는 건축 스타일과 구조가 이 작품의 정서를 살릴 최적의 극장으로 낙점됐다. 러시아의 살롱 문화를 무대로 그대로 옮겨온다.
송 프로듀서는 "객석과 무대의 경계를 없애고 배우들 자체가 매체가 되는 작품이에요. '배우의 몸'에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최근 한국에서 공연 중인 이머시브 공연인) '위대한 개츠비'처럼 관객이 작품 서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객에게 4D 영화 이상의 충격을 선사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이제 쇼노트를 이야기할 때 모회사가 된 카카오M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카카오M은 자회사인 스타쉽엔터테인먼트가 쇼노트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기존 음악 사업과의 시너지 창출 및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제작 역량 강화를 위해서다.
카카오 M은 쇼노트가 오랜 기간 축적한 라이브 콘텐츠 제작 노하우를 활용, 카카오 M의 기존 사업들과 시너지를 창출하며 콘텐츠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음악, 영화, 드라마, 디지털 숏폼 등에 이어 라이브 콘텐츠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며 '종합 콘텐츠 기업'이 됐다.
송 프로듀서는 "쇼노트가 기업다운 기업이 되고 싶다"고 바랐다. "예컨대 디즈니 씨어트리컬 프로덕션 같은 공연기업을 선망합니다. 굳이 고유의 색깔을 고집하기보다 라이브 엔터테인먼트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내실을 다지는 동시에 모를 키워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봤다.
"올해 극장 라인업도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극장 공연이 많은 편이기도 하죠. 이번에 좋은 결과를 내면 (제작규모를) 더 확장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내요. 저희가 갖고 있는 펀더멘털(Fundamental·기본적) 것들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 볼 수 있는 한 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카카오M이 갖고 있는 플랫폼을 통해 선보일 수 있는 동시 다발적인 콘텐츠 기획도 향후에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기대했다.
연세대에서 중문학을 공부한 송 프로듀서는 일찌감치 예술적 끼를 갖고 있었다. 젊은 시절 '한국 재즈의 대부' 이판근을 사사하고 재즈보컬 윤희정에게 노래를 배워 가수로도 활동했다. 자신이 대표로 나선 공연제작사 쇼팩을 통해 조승우 등이 출연한 뮤지컬 '조로' 초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송 프로듀서는 지금 공연 생태계에서 "누가 유연하게 큰 그림을 그리느냐가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현재 출생률 저하에 따라 가족 뮤지컬 시장이 큰 타격을 받고 있어요. 내수 시장만 답이고, 수출을 할 때 라이선스만 답이 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하고 있죠. 예를 들어 '워호스' 등의 공연물 영상을 상영하는 영국 국립극장 'NT 라이브'처럼 우리의 창작물을 영상으로 세계에 선보일 수도 있죠. 조금 더 공연 외적인 공간을 바라보며 아이디어를 찾을 필요도 있죠."
송 프로듀서는 현재 자신의 인생을 표현할 수 있는 노래로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의 '난 그저 보통 남자'를 꼽았다. "노랫말처럼 보통 사람 같이 성실한 사람이고 싶고요."
그의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역시 공연이다. 지난해 '뮤지컬·연극계 아카데미상'으로 통하는 '제73회 토니상'에서 최우수뮤지컬상을 비롯 8개 부문을 휩쓴 뮤지컬 '헤이디즈 타운(Hades town)'을 마지막에 이야기하면서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했다. 신화는 아내 에우리디케가 죽자, 그녀를 되찾기 위해 지하세계로 내려간 오르페우스 이야기다. 죽음의 신 '하데스'는 오르페우스의 노래에 감동, 아내를 돌려주기로 한다. 하지만 또 다른 고난이 이 커플을 기다린다.
송 프로듀서는 "신화를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게 재구성했는데 동화적 연출과 아이디어가 정말 빛나는 작품이에요. 음악의 아름다움과 무대의 미니멀함의 흡입력이 대단하죠. 무대라는 아날로그적인 매력을 가장 잘 살린 작품이라고 할까요"라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realpaper7@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