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미성년 자녀 전입신고에 이혼한 前 남편 도장가져오라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09 13:13

수정 2020.02.09 13:13

미성년자 자녀 전입신고 시 상대 배우자 동의 필요해
문제는 도장 위조하더라도 주민센터 확인절차 없어

/사진=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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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 A씨는 남편과 이혼확정판결을 받은 후 구청에 신고도 마쳤다. 친권과 양육권 모두 단독으로 가지게 된 A씨는 자녀의 전입신고를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으나 이혼한 전 남편의 신분증을 가져오거나 함께 주민센터에 방문하라는 말을 들었다. A씨는 "연락도 안되고 연락할 방법조차 없는데 이혼한 전 남편의 신분증을 갖고 오거나 같이 방문하라니 이런 경우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되냐"며 반문했다.
#. B씨는 친권과 양육권을 모두 포기한 아내와 협의이혼을 앞두고 있다. B씨는 자녀들을 데려와 전입신고를 하려고 했으나 자녀들이 서류상 세대주인 장인 밑으로 되어 있어 전입신고를 위해서는 장인의 도장 또는 아이들 엄마의 도장이 필요했다.
B씨는 장인을 만나기도 어렵고, 더구나 B씨의 아내는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아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이혼한 배후자 도장 위조 사례도
이혼 후 친권·양육권 지정까지 마치더라도 미성년자 자녀의 전입신고를 위해서는 주민센터가 이전 세대주의 도장 등을 요구해 '행정 편의주의'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는 이혼 후 상대 배우자를 마주치고 싶지 않아 막도장을 위조해 제출하는 사례마저 발생해 행정절차 자체가 요식행위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9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이혼 건수는 10만8700여건으로, 전년대비 2700건 증가했다. 특히 이 가운데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부부의 이혼은 전체의 45.4%를 차지했다.

문제는 상대 배우자가 친권과 양육권을 포기하더라도 미성년자인 자녀의 전입신고 시 도장 또는 서명을 위해 주민센터를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미성년자를 전입신고 하기 위해서는 전 세대주의 동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센터가 전입신고를 위해 받은 도장이 실제 상대 배우자의 도장인지 확인하지 않아 사실상 이 절차가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미성년자 자녀의 전입신고를 위해 주민센터를 찾았던 C씨는 "더 웃긴건 도장만 찍으면 되는데, 인감도장일 필요도 없고 도장 주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도 없다"면서 "도장이라는 것 자체가 요식행위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회윤리 비춰 용인되는 행위"
법원도 이 같은 상황에 처했던 피고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지난 2017년 인천지법 형사제1부는 이혼소송 중인 남편의 도장을 위조해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D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무죄를 판결했다.

D씨는 남편 E씨을 상대로 이혼 소송을 하던 중 남편이 양육하던 3살짜리 아이가 자주 아프자 직접 양육하기 위해 친정집에 데려왔다.
친정집 근처 어린이집을 보내기 위해서는 전입신고를 해야 했지만 남편의 동의가 없어 D씨는 남편의 막도장을 위조해 사용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D씨가 남편으로부터 명시적·묵시적 승낙을 받지 못한채 도장을 만들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D씨의 법익침해는 막도장이 전입신고시 1회에 한해 사용된 데 그쳤고, 피고인이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자녀와 자신의 보호이익을 포기했어야 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여겨진다"며 "유죄의 측면이 있지만 법질서 전체의 정신이나 사회윤리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행위라고 본다"고 판단했다.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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