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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엥테르미탕

최진숙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12 17:04

수정 2020.02.13 08:44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성 부근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 가난했던 싱글맘 조앤 롤링이 유모차에 탄 아이를 옆에 두고 종일 글을 썼던 곳이다. 커피 한잔 값으로 오래 머물러도 되겠느냐는 롤링의 부탁에 카페 주인은 흔쾌히 응했다. 심지어 가끔은 커피값도 받지 않은 채. '해리포터' 탄생 전 무명작가 롤링에게는 가난과의 싸움이 가장 처절했다. 그 어려웠던 날들 중 귀중한 발판이 됐던 게 스코틀랜드 예술위원회의 신인 작가 창작지원금이다. 해리포터 구상 후 첫 원고가 이 지원금 덕에 나왔다.

예술가에게 가난은 낭만이 아니라 고통 그 자체다. 그 유명한 고흐의 일생도 이를 증명한다. 지금이야 그의 그림 한 점은 가지고 있어야 세계 유명 미술관에 이름을 올리지만, 살아생전 그의 그림은 단 한 점 팔린 적 없다.
그로 인해 고흐는 멸시와 조롱에 시달리지 않았나. 미술품 중개상 동생 테오가 없었다면 생계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국내에선 2011년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의 죽음으로 예술인들의 열악한 현실이 집중 조명됐다. 젊은 예술가들이 꿈과 재능을 펼쳐보기도 전에 좌절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국가가 모른 척해선 안된다는 주장이 비등했다. 그 후 예술인복지법 등이 나왔지만 여전히 무명예술가들의 여건은 척박하다는 지적이 계속됐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선 공약이었던 '한국형 엥테르미탕(Intermittent)'을 총선 7호 공약으로 12일 발표했다. 엥테르미탕은 프랑스어로 '휴지기'를 뜻하는 말로, 영화·공연·영상분야 인력을 위한 특별실업 보험제도를 통칭한다. 1969년 샤를 드골 정부하에서 시행됐다. 해당 인력들은 매달 버는 소득을 정부에 신고하고, 그 절반을 보험료로 낸다. 정부는 예술가가 수입이 없을 때 조건에 맞춰 소득을 보장한다.
여당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 4관왕을 거머쥐며 전 세계에 새로운 한류 충격을 주고 있는 때를 맞춰 이 제도를 공약에 넣었다. 제2·제3의 봉준호를 위해 다양한 시도가 예상된다.
실효성있게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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