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 자동차보험 못드는 전동킥보드, '손목치기' 표적됐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2.29 10:00

수정 2020.02.29 10:00

PM 사고 급증 가운데 수상한 '합의'
사고시 합의 못보면 PM 운전자 형사처벌
약점 노린 표적범죄에 '전전긍긍' 피해 속출
[파이낸셜뉴스] #최모씨(29)는 최근 법원으로부터 벌금 50만원을 내라는 처분을 받았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사고 때문이다. 당시 최씨는 전동킥보드를 타고 테헤란로 이면도로를 달리다 횡단하던 보행자와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보행자의 휴대폰이 땅에 떨어졌다. 그는 휴대폰이 고장났다며 최씨에게 60만원이 넘는 합의금을 요구했다.


피해자는 “휴대폰을 수리한 게 맞느냐”는 최씨의 질문에 “무보험 사고 신고건을 합의하는 거지 보험에 비용 청구하는 게 아니다”라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영수증 역시 제출하지 않았다.

끝내 합의를 거부한 최씨를 피해자는 경찰에 고발했고 법원은 도로교통법위반으로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윤동식씨(26)는 지난해 여름 전동킥보드를 타고 퇴근하다 한 여성과 부딪혔다. 큰 사고가 아니라 연락처만 주고받고 헤어졌지만, 며칠 후 연락해온 피해자는 허리가 아프다며 합의금으로 100만원을 요구했다. 너무 작은 사고였기에 당황스러웠지만 합의금을 주지 않으면 입원하고 신고까지 하겠다는 통에 머리가 지끈거렸다고 했다. 윤씨는 급한대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정보를 구해봤지만 형사처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입금할 수밖에 없었다.

전동킥보드 등 개인용이동수단(Personal Mobility·이하 PM) 이용자가 법률공백 속에서 ‘손목치기’ 표적이 되고 있다. 현행법상 PM이 사고를 낼 경우 합의를 보지 못하면 형사처벌을 받는다는 약점을 노린 것이다. 입법이 미비한 상태에서 수사기관은 PM을 타깃으로 한 범죄사실을 인지조차 못하고 있다.

PM이 범죄표적으로 떠올랐음에도 보호할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아 관련 산업 활성화에 장애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PM 운전자 최씨에게 피해자가 합의금을 요구하는 모습. 피해자는 휴대폰 수리비 영수증 제공 없이 합의금만을 요구했지만 최씨가 끝내 거부하자 경찰에 고발했다. 최씨 제공.
PM 운전자 최씨에게 피해자가 합의금을 요구하는 모습. 피해자는 휴대폰 수리비 영수증 제공 없이 합의금만을 요구했지만 최씨가 끝내 거부하자 경찰에 고발했다. 최씨 제공.

■PM, '손목치기' 표적에도 속수무책
2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PM은 자동차가 가입하는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자동차나 이륜차와 달리 자동차관리법상 등록·사용신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부 PM 서비스 업체에게 책임보험을 제공하는 보험회사가 있지만, 자동차보험 가입대상으로 받아주는 곳은 없는 게 현실이다.

문제는 자동차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차량이 사고를 내면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제4조 제1항의 특례조항 적용을 받을 수 없다는 점에 있다. 해당 규정은 특정 보험가입 차량 운전자가 사고를 냈을 경우 형사 고발되지 않도록 막는 조항인데, PM이 사고를 내면 이 조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해 피해자가 PM 운전자를 고발하면 과실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는 한 형사처벌을 피할 수 없다. 더욱이 PM이 블랙박스를 갖고 있지 않아 상대의 악의를 입증하는 것도 불가능에 가깝다.

블랙박스가 일반화되기 전 성행했던 ‘손목치기’ 범죄가 PM을 대상으로 확산될까 우려되는 이유다. 최씨의 사례처럼 법의 공백을 악용한 이들이 고의로 PM과 충돌하거나 지나친 배상을 요구해도 운전자로선 합의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도리가 없는 실정이다.

자동차종합보험에 가입된 차량 사고의 경우 보험사기 의심사례가 발생하면 조사를 요청할 수 있고 상습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에 대해서도 관리가 가능하지만, PM은 이 모두가 불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최근 4년간 전동킥보드 사고현황
(건)
연도 사고건수
2015 14
2016 84
2017 197
2018 233
(한국소비자원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

■관련 범죄행태 파악 못한 검·경
수사기관은 관련 통계집계는 물론 이 같은 사실을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다. 경찰청 관계자는 “(자동차보험) 가입대상이 아니고 받아주지도 않으니 문제가 된다”면서도 “합의는 자기들끼리 하는 거고 신고가 접수되는 게 아니니까 일일이 파악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일선 경찰 관계자는 “정확히 그런 일이 얼마나 일어나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도 “킥보드 사고가 늘어나고 있는 건 맞고 합의가 안 되면 처벌을 받게 되는 것도 맞으니, (PM을 노린 범죄사례가) 꽤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검찰은 관련 범죄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예 PM과 관련한 통계도 따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법률 미비뿐 아니라 수사기관의 감시나 감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PM사고는 증가일로에 있다.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으며, 규제완화(자전거도로 주행 허용) 및 관련 서비스(고고씽·씽씽 등) 활성화로 2019년엔 신고사례가 더욱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통계는 경찰에 신고가 접수된 건으로 당사자 간 합의가 이뤄진 경우엔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PM 특성상 사람이 크게 다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고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내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사진은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7대의 전동 킥보드가 주차돼 있는 모습. 출처=fnDB
서울시내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전동킥보드 공유 서비스. 사진은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 7대의 전동 킥보드가 주차돼 있는 모습. 출처=fnDB

■독일·일본은 자동차 준해 처리
다른 나라는 어떨까. 지난해 10월 보험연구원 황현아 연구위원이 작성한 '전동킥보드의 법적 성격과 규제 방향'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PM을 법적으로 자동차에 준한다고 보아 의무보험에 가입하도록 하고 있다. 즉 자동차 사고처리에 관한 규정이 그대로 전동킥보드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통행은 자전거와 유사하게 규제하지만, 사고 시엔 자동차의 일종으로 보아 처리한다. 예컨대 독일에서 음주상태에서 전동킥보드를 타고 주행하다 적발되면 자동차 음주와 동일하게 처벌한다.

또한 기기 승인과 의무보험 가입도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법에 따라 처리한다. 이에 따라 알리안츠 등 독일 보험사는 대인·대물사고를 보상하는 전용보험을 출시해 보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사고 시 PM 운전자에게 과도한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다.

해당 연구는 '전동킥보드 이용 확산 및 자전거도로 통행 등에 따른 사고 위험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동킥보드의 법적 정의를 명확히 하고, 특히 사고책임 및 보험 관련 규제를 선제적으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방안으로 독일, 일본과 같이 전동킥보드도 자동차관리법 및 자배법상 자동차로 보아, 자배법상 운행자책임을 적용하고 의무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적고 있다.

이 같은 법률 미비는 관련 산업 활성화에도 장애로 자리할 수 있다. 자유롭게 PM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PM 공유 서비스를 이용했다는 이정률씨(29)는 "전에는 종종 탔는데 피해를 봤다는 얘기를 커뮤니티에서 읽은 이후로는 (전동킥보드를) 타지 않는다"며 "아직 이런(PM을 대상으로 한 표적범죄) 일이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주변에서도 알고 있는 애들이 있어 점점 알려질 것 같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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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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