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물량이 이전보다 확연히 증가한 때는 문민정부 이후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시계와 관련해 유난히 화제가 많다. 앞면에 한자 이름을 넣은 것이나, '대도무문(大道無門)' 좌우명을 새긴 것도 그가 처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 시계로는 대선 전에 만든 '03 시계'가 실은 더 유명하다. 바탕에 1부터 12까지 숫자는 하나도 없고 0과 3 숫자만 표시된 독특한 시계였다.
그 후 대통령 시계에 집권자 철학이 종종 담겼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 관련 글귀를 넣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원칙과 신뢰 새로운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를 새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인기가 드높았던 출범 초기 대규모로 가짜 시계가 유통돼 관련자들이 실형을 선고받는 사건도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시계가 코로나19 정국에서 때아닌 봉변을 당하고 있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만희 총회장이 2일 코로나19 관련 기자회견을 연 자리에 박 전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금장 봉황시계를 차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어 바로 음모론까지 등장했다. 회견 직후 이전 청와대 인사들은 박 대통령 당시 은장시계만 제작했다며 명백한 가짜라고 반박했다. 이만희는 신도로부터 받은 것이며 정세균 총리 시계도 있다고 해명하면서 더 불을 질렀다. 정 총리는 허무맹랑한 주장이라며 펄쩍 뛰었다. 정치권은 이번 시계 사건이 단순 해프닝이 아니라 고도의 정치공작이 깔린 행위라며 갖은 해석을 내놓고 있다. 대한민국이 신천지 때문에 이래저래 편안할 날이 없는 것 같다.
jins@fnnews.com 최진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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