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4분기까지만 해도 한국 항공산업은 사상 초유의 호황이었다. 그래서 국토부는 저비용항공사(LCC)를 3곳이나 추가 인가했다. 전국 고속버스회사 수가 11개인데, 항공사 수도 11개다. 신규 면허를 내준 국토부 당국자는 "항공시장 경쟁 촉진과 시장 혁신을 가져올 것"이라며 "지역 주민의 공항 이용 편의를 높이고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2022년까지 약 2000명 규모로 창출할 것"이라고 했다. 인구와 관광수요를 감안하면 국내 적정 LCC 수는 4~5개 정도다.
10년 내 인수합병으로 네댓 개는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통 큰 국토부를 탓할 생각은 없다. 기준을 충족하면 허가하되 경쟁해서 망하게 하는 것이 자유시장경제 원칙이다. 그런데 허가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일본제품 불매운동, 홍콩 시위로 항공·여행업 등 관광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도 항공사들은 일본 대신 중국, 대만, 동남아 노선에서 새 활로를 찾았다. 때마침 정부가 배분한 중국 운수권이 큰 힘이 됐다. 베트남도 하루에 90편 이상 한국 비행기가 떠 다낭의 경우 '경기도 다낭시'로 불릴 정도였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뿐, 끝 모를 추락이 시작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95개국(3월 5일 기준)이 한국을 여행 자제 또는 주의 국가로 지정했다. 일순간 중국, 동남아, 러시아 등 모든 국제선이 닫혔다. 베트남행 아시아나 항공기는 이륙한 지 40분 만에 인천공항으로 회항했고, 말레이시아에서 귀국하려는 승객을 태우러 간 비행기는 빈 채로 갔다. 대형 항공사들까지도 무급휴가, 임금삭감 등 자구책을 강구해 비상긴축경영에 나섰다. 대한항공도 황금노선인 미주노선을 크게 줄였다. 항공사 2월 매출은 전년동월 대비 50% 수준으로 급락했다. 3월부터는 20% 수준일 것이라고 한다. 휴업해도 비용은 줄어들지 않는다. 항공기 리스료, 최소한의 임금, 사무실 임차료 등 고정비용은 여전히 지출된다. 3월부터는 전 항공사의 비행기 60% 정도가 공항에 서있게 됐다. 보잉 B737 한 대를 24시간 세워두는 데 주차료가 45만원이 들고, 월평균 리스료는 30만달러(3억6000만원)가 든다. 항공기 10대를 세워두면 매달 37억원 이상이 날아간다.
항공사는 대부분 부채비율이 높아 시중은행으로부터 자금조달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에 국토부는 지난달 17일 항공사에 최대 3000억원의 긴급 대출과 3개월간 공항사용료 납부 유예 등을 내용으로 '항공분야 긴급 지원대책'을 발표했다. 이것만으로는 언 발에 오줌누기다. 3개월을 버틸 수도 없는데 대출이나 납부 유예가 무슨 소용이랴. 과감하고 창의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무담보 장기저리 긴급경영안정자금 지원, 공항사용료와 세금 감면, 고용유지 지원금 확대, 항공기 리스 활성화 등 가시적이고 실질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경영부실 문제가 아닌 국가적 재난이 원인이기 때문이다. 2015~2018년 제주항공 119억, 대한항공 76억, 진에어 70억, 아시아나 41억원이 부과된 어마어마한 과징금도 문제다.
항공권을 '딱지'라 한다. 몇만원짜리 '딱지'를 얼마나 팔아야 이 큰돈을 만들 수 있겠는가. 고사 직전인 항공사에 추경을 통해 긴급 자금수혈을 하는 것 외에는 백약이 무효다.
항공산업이 죽으면 관광산업이 죽고, 호텔·리조트·식당·엔터테인먼트·마이스 등 관련 산업이 몰락하고 활기가 사라져 나라 분위기마저 침체된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전 한국항공우주정책·법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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