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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불명' 화재로 재산피해..'건물주 책임' 놓고 엇갈린 1·2심 판결, 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15 10:44

수정 2020.03.15 10:44

아래층 불길이 옮겨 붙어 물건 홀라 태워 
피해업체 "건물주·점유주 책임" 소송 제기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사진=픽사베이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사진=픽사베이
[파이낸셜뉴스]원인 모를 화재로 재산상 피해를 입은 한 업체가 건물주 등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1·2심 판단이 엇갈렸다. 1심은 전기배선의 문제 등 하자로 불이났을 가능성이 높다며 건물주에게 책임을 물린 반면, 2심은 이를 단정할 순 없다는 이유로 누구도 배상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38부(박영재 부장판사)는 A사가 B사와 C사를 상대로 “건물 화재로 인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육류 가공업체인 A사는 B사가 소유한 인천 남동구에 위치한 한 공장 1층에 입점했던 업체다. 화장품 제조업체인 C사는 같은 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2~3층을 사용했다.

지난 2017년 6월 30일 새벽 2시43분경 이 건물 지하 1층 화물승강기 주변에서 일어난 불이 C사의 화장품을 태우며 번지면서 지상 1층과 A사의 물건까지 화마로 집어삼켰다.

경찰과 소방당국이 현장 감식에 나섰으나 명확한 화재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최초 신고자인 건물 경비원과 현장에 처음으로 도착한 소방대원의 진술, 그리고 화재 잔여물 분석 등을 종합하면 지하 1층에 위치한 폐쇄된 화물승강기 인근에서 불씨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될 뿐이었다.
다만 소방당국은 방화 가능성은 거의 없고, 지하 1층 천장에 있던 전선에서 스파크가 발생해 불이 붙었을 가능성을 높게 봤다.

■1심 "전선이 화재 원인..건물주 배상책임"
A사는 이러한 분석에 따라 건물주인 B사와 화재가 발생한 지하 1층을 점유한 C사를 상대로 “공작물 설치·보존상의 하자에 따른 책임을 져라”며 11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B사와 C사는 “이번 화재는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공작물의 하자로 발생했는지 단정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1심은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라는데 무게를 싣고, 건물을 소유한 B사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민사소송에서 사실의 입증은 추호의 의혹도 있어선 안 되는 자연과학적 증명이 아니”라며 “경험칙에 비춰 모든 증거를 검토해 어떤 사실이 있었다는 점을 시인할 수 있는 고도의 개연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이어 “방화, 인적·기계적·화학적 요인, 가스 누출 등 모든 화재 발생 가능성을 배제했을 때 전기적 요인을 발화원인이라 보는 것은 개연성의 측면에서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이번 화재는 현장에 설치된 전기배선의 문제 등 전기적 요인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화재가 건물의 하자로 발생한 것이므로 B사는 공작물책임으로서 A사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며 “임차인인 C사는 전기배선의 이상을 미리 알았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므로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화재 발생의 과정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고, 건물주도 손해를 입었다는 점 등을 들어 B사의 책임을 70%로 제한해 7억9000여만원을 A사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 "방화 아니라고 단정 못해"
2심 재판부는 ‘전기적 요인에 의한 화재’라는 1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소방당국은 화재의 원인을 ‘미상’이라고 결론지었다”며 “경비원도 화재 당시 ‘잠을 자고 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비춰보면 화재 원인이 방화나 인적 요인이 아니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전선 하자로 화재가 발생했다는 점이 통상인이 의심을 품지 않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건물주나 점유주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결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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