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나이가 들면 어릴 적 듣던 동요도 달리 들린다. 내게는 초등학생 시절 배운 ‘섬집아이’가 그랬다. 이 노래가 얼마나 애달픈 상황과 정서를 담고 있는지를 깨달은 것은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다. 가난한 엄마가 갓난아기를 누구에게 맡기지도 못한 채 집에 혼자(!) 두고 일하러 나갈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싶어 울컥 했던 기억이 있다.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르네 젤위거에게 생애 첫 여우주연상을 안긴 영화 ‘주디’는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에 해당되는 마지막 콘서트 장면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엔딩을 장식하는 노래 ‘오버 더 레인보우’를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감정이 벅차올라 눈물이 주룩주룩 난다.
멜로영화 제목으로도 쓰인 명곡 ‘오버 더 레인보우’는 ‘오즈의 마법사’의 영원한 도로시, 주디 갈랜드의 아름답고도 몽환적인 목소리와 함께 현실 너머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마법의 주문과 같은 노래로 기억되곤 한다.
하지만 3040세대에겐 ‘브리짓 존스’로 기억되는 젤위거가 어느새 관객과 함께 나이가 들어 비극적 삶을 살았던 주디 갈랜드로 서 있다는 그 자체가 남다르게 다가온다. 또한 갈랜드의 미성과 달리 다소 허스키한 목소리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부를 때, '화려했기에 더 서글픈' 갈랜드의 삶과 할리우드 배우이자 동시에 한 여성인 젤위거의 현재 그리고 관객인 나의 지난 세월이 엉키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마음에 일렁인다.
영화가 시작하면 갈랜드가 두 아이를 데리고 집도 돈도 없이 밤무대를 전전하는 중년 여성으로 등장한다. 그녀의 사생활을 잘 모르는 한국 관객들은 다소 놀랄 만하다.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생애를 훑는 전기 영화와 달리 갈랜드의 매우 특정한 두 순간, 즉 아역배우 시절과 생의 마지막 1년여의 시기를 다룬다. 마지막 무대가 된 영국 런던 콘서트 장면은 영화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주디의 현재 삶은 어릴 적 스튜디오에서 너무나 바쁘고 혹독했던 어린 시절과 연결되어 있다. 이렇듯 안타깝고도 비극적 면모도 부각되나, 마지막 콘서트 장면에선 그녀의 순수함과 타고난 재능이 빛난다. “주디가 할리우드의 생존자였으며, 어떤 순간에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다"는 각본가 톰 엣지의 말처럼, 갈랜드의 무대 위 모습은 눈부시다.
프로듀서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그동안 주디 갈랜드가 비극적인 인물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바꿨다. 그녀가 인생의 비극을 피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고, 다시금 배우이자 가수로서의 천재성을 되새기게 됐다.” 늘 사랑을 갈구했던 갈랜드 역시 관객들이 자신의 사생활보다는 무대에서 열정적이었던 주디로 기억해주길 바랄 것이다. 25일 개봉. 12세 관람가.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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