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유경선 기자 = 텔레그램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이 25일 마침내 포토라인에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사죄 대상에 가학적 성 착취를 당한 피해자들에 대한 언급은 끝내 포함돼있지 않았다. 박사방을 열었을 때부터 포토라인에 서기까지, 피해를 당한 여성들을 시종일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씨는 개인정보를 볼모로 잡히고 인격과 존엄성을 파괴당한 피해자들 대신 손석희 JTBC 사장, 윤장현 전 광주시장, 프리랜서 기자인 김웅씨를 언급했다. 피해자들에게 사죄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입을 꾹 다물었고, 표정에서는 죄책감이 엿보이지 않았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에 텔레그램에서 성적 착취를 당하며 고통을 겪은 여성은 없었던 셈이다.
범죄학 분야 전문가들은 모두 조씨가 '피해자들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가 마땅히 사죄의 대상이어야 하는데, 이들을 인격으로 보지 않은 것"이라며 "여성비하적인 태도, 피해자를 무시하는 태도가 조씨의 말에 그대로 묻어났다"고 진단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피해자들을 물건처럼 보는 것"이라고 봤다. 이 교수는 "성범죄자들 중 가학성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적으로 상대방에 아픔에 공감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물화(物化)한다"며 "기자의 질문에 답변을 할 수 있는 공감 자체가 형성이 안돼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역시 "피해자에 대한 반성이 없다는 것은 결국 피해자를 부정하는 것"이라며 "자기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했던 '박사방'에서 이들은 내 지시에 따라 조종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비인간 대상에게 굳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자신들도 필요에 의해 한 게 아니냐'는 자기합리화가 깔려있다고 본다"며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도 그런 식으로 방어하며 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학과 교수는 "'피해자에게 사죄할 마음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은 정상적 사고에서 나오는 것인데, 조씨에게는 그런 사고가 작동하지 않았다"며 "검거되기 얼마 전에도 활동하던 봉사단체에 갔는데, 정상적인 공감능력이 있으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해자들 대신 손 사장, 윤 전 시장, 김씨 등이 언급된 점에 대해서 이수정 교수는 "'센 남자들'만이 자신과 동급이라고 생각하면서 사죄가 손 사장이나 윤 전 시장에게 간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카메라를 들이대자 '나도 이들 정도 수준은 되는 사람' '서로 사과를 나누고 맞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씨는 텔레그램에서 'N번방' 계열인 '박사방'을 개설하고, 이를 통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가학적으로 성적 착취한 영상물이 촬영·공유되게 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로 지난 19일 구속된 후 이날 오전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이 파악한 '박사방' 피해자는 74명이며, 이중 16명은 미성년자였다. 조씨는 '박사방' 가담자들에게서 영상 시청 대가로 비트코인을 받았는데, 검거 당시 조씨의 주거지에서는 이를 현금화한 것으로 추정되는 1억3000만원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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