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는 전통 공예의 중요한 특질 중 하나이며 민족적 표상이기도 했던 '백색'이 근대화,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 시각문화 안에서 구현되고 소비되는 양상에 주목한다. 나아가 시각예술 역사 안에서 백색의 문화적 유산이 계승되고 재편되어온 과정을 비평적 시선에서 살피고자 한다. 전시를 통해 '민족적 전통'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담론을 제도화하고 타자의 시선에 맞추어진 이상적 가치들을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백색에 투영해 온 상징적 가치들과 탈각된 요소들 또한 균형잡힌 시선으로 되돌아보기 위해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동시대 미술가들의 작업들은 오늘날 편재하는 일상의 백색문화로부터 다양한 발견점과 함의를 드러낸다.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 5인의 신작 10여 점과 전시를 위한 사전 연구 과정에 활용된 자료들이 다층적으로 설계된 백색 공간 안에서 풍부한 백색의 심상과 풍경으로 펼쳐진다.
참여 작가인 김경태, 신현정, 여다함, 주세균, 최고은은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세대로 각자의 예술적 연구에 기초한 미적 실천을 자유롭게 전개해 온 창작자들이다. 다섯 작가는 '백색'이라는 큰 주제를 개별적인 해석과 접근을 통해 상이한 감각의 백색의 표면을 도출해냈다.
전통 도예의 기법을 방법론 삼아 개념적 오브제를 제작해온 주세균은 검은 바탕의 도자를 백자 표면으로 만들어가는 공예적 수행의 과정과 연출된 결과물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지난 몇 년 간 직물을 회화의 표면으로 실험해온 신현정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오래된 옥양목과 전통 직물을 활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직물-회화 구조물을 선보인다. 전작에서 뜨개질로 완성한 향로 형태의 비정형 오브제를 선보인 바 있는 여다함은 백색의 비정형성과 불투명성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매체로써 흰 연기와 흩어지는 향에 주목한다. 도시의 단면을 밀착된 시선으로 담아 온 김경태는 백색조명 즉, 인공의 흰 빛을 전달하는 입자와 질감을 특유의 추상적 이미지로 선보인다. 흰색에 관한 예민한 감각과 관찰을 바탕으로 일련의 조각작업을 전개해 온 최고은은 대량 생산된 백색가전의 형질과 구조, 공업재료의 적용, 색채의 변성을 조각적 포디움에 대입하여 번안해 낸다. 동시에 백색 공간 안에서의 백색 조각의 배치가 미묘한 긴장감을 발생시킨다.
우란문화재단은 전통 공예를 재조명하고 새롭고도 실험적인 공예의 발판을 마련함으로써 전통 공예의 전승과 저변 확장 그리고 동시대의 새로운 시각문법을 제시하기 위해 이번 기획전을 개최했다.
우란문화재단 관계자는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수사를 벗어나 전통 역시 당대 생활의 일부이자 일상 속의 새로운 발견이기를 바라는 것"이라며 "현재와 분리된 과거의 유물이 아닌 현재 생활과 이어지는 전통의 가치를 역설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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