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18세, 투표소 가는길에]
【편집자주】만 18세의 생애 첫 투표, 그 시작을 파이낸셜뉴스가 응원합니다. 4.15 총선 페이지 오픈을 맞아 기획칼럼 '만 18세, 투표소 가는 길에'를 연재합니다. 진정한 민주시민의 권리인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만 18세들에게도 축제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내가 처음 선거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2년이다. 대학에서 선배들을 따라 '데모'하러 다니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면 보수가 무엇인지, 진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주관도 뚜렷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금의 내 정치적 성향은 당시 선배들에 의해 주입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해 12월 대통령선거가 치러졌다. 서울 강동구 일대에서 당시 야당을 도와 부정선거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그래 봐야 행동대원에 지나지 않았지만). 매일 밤 봉고차를 타고 익숙치도 않은 동네를 몇 번씩 돌아다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하지만 정작 나는 투표를 하지 못했다. 1973년생이어서 투표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열여덟 살이 부러운 이유다.
20대 시절 고향(부산)을 내려가면 정치 얘기로 온 집안이 시끌벅적했다. 어른들은 죄다 '보수'였다. 아니 지금 기준으로 보면 '꼴통 보수'에 가깝다. 진보 진영에 대한 얘기들은 온통 흑색선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상도는 여당(보수), 전라도는 야당(진보)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었다. 지역감정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시대였다. 정말이지 경상도 어른들의 말만 들으면 전라도 사람들은 '머리에 뿔 달린 북한 공산당'이나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 만난 전라도 출신 친구들은 한결같이 좋은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집안에서 나는 유일한 야당의 대변자였다. '외로운 싸움'을 벌이며 제아무리 목소리를 높여 봐도 '어린 것이 뭘 아냐' '네가 아직 어려서 현실을 모른다'는 힐난이 돌아올 뿐이었다. 그렇게 10년이 넘게 지나서야 고향집 밥상머리에서 정치는 사라졌다. 지금도 나는 선거철만 되면 어머니와 식구들에게 기호 몇 번을 찍으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다행(?)스럽게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던 2002년 대선부터는 먹혀들고 있다. 나는 진보 성향의 유권자다. 30년 가까이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투표권을 가진 이래 단 한 번도 투표를 포기한 적이 없다. 내가 아는 투표는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이다. 보수도, 진보도 백 점짜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중에 더 나은(자기 판단에)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다. 그래야 내가 사는 이 사회가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조금이나마 바뀔 수 있다.
기권은 최악이다.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고 해서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 투표를 하지도 않고 나라가 어떻다는 둥, 사회가 어떻다는 둥, 정치가 어떻다는 둥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실제 어떤 나라는 투표하지 않는 사람에게 벌금을 매기고, 어떤 나라는 그 다음 선거의 투표권을 제한하기도 한다. 투표를 어엿이 시민의 의무나 책무로 간주하는 것이다.
열여덟 청춘에게 '선거의 맛'에 빠져볼 것을 제안한다. 비유가 적절한지는 논외로 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야구를 떠올려보자. 야구를 가장 재미있게 보는 방법 중에서도 첫 번째는 좋아하는 팀, 좋아하는 선수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보는 재미가 생긴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다. 좋아하는 팀과 선수를 고를 때처럼 정당과 정치인을 골라보자. 잘한다 싶을 때는 그 정당과 정치인을 응원하고, 못한다 생각되면 욕을 해보자. 그래서 정치를 내 생활의 일부(일상생활은 아닌 것이 낫다)로 끌어들이자. 그래야 이 세상과 사회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
복권을 사지 않으면 아무리 신에게 당첨되게 해달라고 빌어도, 신이 당첨시켜 주고 싶어도 별무소용이다. 투표도 마찬가지다.
윤경현 증권부장 blue73@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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