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현대 민주국가에서 대표냐 대의냐를 따지는 건 별 의미가 없다. 루소의 처음 생각이 어떻든 '주권자인 시민들의 심부름꾼'을 자처하는 사람들을 뽑는 게 선거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국민들은 그들을 선출하는 선거 기간에만 자유로울 뿐이라는 사실 또한 다르지 않다. 심부름꾼을 다짐하던 자들이 선거가 끝나면 권력자로 변하여 국민을 노예처럼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따져보아야 할 것은 루소가 그처럼 생각한 이유이다. 그는 시민들이 노예로 전락하는 원인이 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한다. "자유를 누리는 그 짧은 기간 동안 인민이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보면, 선거가 끝난 후에 그들이 다시 자유를 상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주권자인 시민들이 선거라는 짧은 자유마저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게 노예가 되어 버리는 주된 이유라는 것이다.
대표 선출 못지않게 중요한 선거의 기능은 평가와 선택이다. 과거를 평가하고 미래를 선택하는 게 선거라는 말이다. 심부름꾼으로 뽑힌 자의 과거 행적을 제대로 평가해야만 미래에 달라진 그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한 주일 앞으로 다가온 이번 국회의원 총선은 바로 그런 의미를 가진다. 지금까지 본 현 정권의 행보가 앞으로도 계속되길 원하면 여당을, 여당의 행동이 달라지길 원하면 야당을 선택해야 한다. 정치, 외교, 안보, 경제, 사회 모든 영역에 있어서 정권의 실적을 매의 눈으로 평가해야 한다. 잠깐의 단기 성적이 아닌, 지난 3년 전체를 냉정하게 평가한 후 선거에 임해야 한다. 평가의 주된 대상은 정파에 관계없이 당연히 권력을 잡고 있는 현 정권이다. 야당과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적 역량, 소득주도성장을 앞세운 경제 성적, 북한과 중국을 감싸며 북한 핵문제 해결을 공언한 외교와 안보 실적,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공수처 설치 등 이른바 검찰개혁을 둘러싼 행보. 대한민국 전체를 책임지는 심부름꾼 역할을 해온 집권당이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야당은 그들이 권력을 잡았을 때 주된 평가의 대상이 된다. 심부름꾼의 행동을 바꿀지, 여전히 권력의 노예로 전락할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택에 달려 있다. 감언이설에 속거나 혹은 속는 줄 알면서도 평가보다 정파를 앞세운 결과는 늘 '역대 최악의 국회'였다.
결정하기 어렵다면 이 말을 기억하자. "항상 원칙을 위하여 투표하라. 설령 너 혼자 표를 던진다 하더라도. 그러면 너는 네 표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가장 멋진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존 퀸시 애덤스, 미국 제6대 대통령)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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