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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브로커 악의성 입증 용이”..'브랜드 선등록' 공동대응 성과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8 09:00

수정 2020.04.18 08:59

사진=뉴스1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한국 기업들의 브랜드를 무단으로 중국에서 선등록해 우리 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괴롭히는 중국 상표브로커의 문제를 법적으로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있다.

■"억울해도 中진출하려면"..악의적 브로커에 수수료
18일 법조계 및 변리사업계에 따르면 권리를 획득한 해당 국가에서만 효력이 발효되는 속지주의라는 지식재산권법의 대원칙상 한국에서 상표권 등록을 했다고 하더라도, 타국가에서는 권리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진출하고자 하는 국가에서도 상표권 등록을 해야 한다.

특히, 우리와 교역량이 가장 많은 국가인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 예능 등 한국 컨텐츠가 큰 인기를 끌자 한국기업의 F&B 프랜차이즈, 화장품, 패션 브랜드 등이 대량으로 악의적인 중국 상표 브로커들에게 중국 상표권을 선점당하는 문제가 수년전부터 발생했다.

하지만 그간 국내의 상표권 분야 전문 변리사들조차도 중국에서의 상표권 선점 문제는 법률적 대응으로는 해결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실제로 상표브로커들이 보유한 상표를 대상으로 무효심판을 제기해도 패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일단 중국에서 상표권을 선점당한 것을 인지하면 해당 브로커와 협상을 통해 좋은 가격으로 사오는 것이 가장 좋은 대안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 내에서도 상표권 선점 문제가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면서 중국 상표 무효심판을 담당하는 중국 상표평심위원회와 중국 지식재산전문법원 판례들도 조금씩 악의적 상표브로커에 의해 선점된 상표권에 대해 제제를 가하는 취지의 결과들이 나오게 됐다.

2017년에는 한국의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 8개 기업이 모여 중국의 유명 상표브로커를 상대로 공동으로 무효심판을 제기했는데, 개별적으로 심판을 제기했으면 승소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8건 모두 승소 판결이 나오면서 중국 상표브로커에 대한 법률적 대응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결과를 주목해 특허청은 중국 상표브로커로 인한 피해기업 지원을 위해 2018년도에 추진한 중국 상표브로커에게 상표권 선점 피해를 당한 기업들을 대규모로 모집, ‘대규모 지재권 분쟁 공동대응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중국 지식재산분야 전문으로 알려진 지심특허법률사무소(이하 지심)가 수행기관으로 선정됐다. 지심은 53개 기업을 대리해 53전 전승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들 53개 기업들은 중국 내 주요 상표브로커(5명)로부터 피해를 입은 프랜차이즈·인형·의류·화장품 등 업종의 우리 기업들이었다.

지심은 중국 상표브로커가 대량으로 선점하고 있는 상표들을 심층조사·분석한 후 공동탄원서 제출, 병합심리 등과 승소를 위한 논리와 전략을 개발했다. 특히, 브로커의 악의성을 입증하는데 주력해 브로커 자체에 대한 정보 뿐만 아니라, 브로커가 설립한 자회사의 지배구조, 브로커의 SNS활동, 인터넷쇼핑몰 등에서의 판매활동을 심층분석, 중국 법원이 해당 권리자가 악의적 브로커라는 것을 인정하는 판단을 이끌어냈다.

지난해 9월부터 승소결과를 얻기 시작한 지심은 총 53건의 상표권 분쟁에서 53건 전부 승소라는 결과를 얻었다.

■피해기업들 협의체, 지재권 대응 역량 높여
유성원 지심 대표변리사는 “그간 우리 기업은 중국 시장에서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경우가 많아 브로커 선점상표를 무효시키기 어려웠지만 최근 중국 정부의 상표브로커 근절 의지에 따라 2017년에 발표된 중국 상표 심리기준의 변화, 중국 지식재산전문법원 및 최고인민법원의 최근 판례들을 정밀하고 심도 있게 분석해 무효심판에서의 승소 전략과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 주요한 승소 이유로 꼽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변리사업계는 동일 브로커에 의한 피해기업들의 협의체 구성 공동대응 방식이 상표브로커의 악의성을 보다 용이하게 입증할 수 있고 공통의 자료를 활용할 수 있어 비용도 절감되며 기업 간 노하우를 공유할 수 있어 지재권 분쟁대응 역량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 대표는 “최근 중국 상표 심리 기준을 살펴보면 타인의 상표를 진실한 사용의사 없이 대량으로 선점하는 경우에 중국 상표법 제44조 ‘기타 부정당한 수단으로 획득한 상표’라고 해석하고 있다”며 “공동대응을 통해 중국 상표국에 특정 상표권자가 악의적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상표브로커라는 것을 인식시켜 중국 상표국의 블랙리스트에 등재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 상표국의 블랙리스트에 등재되면 해당 브로커에 의한 이후의 출원은 별도로 대응을 하지 않더라도 중국 상표국에 의해 자동으로 거절되는 것도 발견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즉, 무효심판에서 강력한 논리와 입증으로 악의적 상표브로커라는 인식을 명확하게 심어주게 되면, 중국 내에서 상표브로커의 선점 활동을 크게 위축시켜 1~2년 뒤에는 브로커 활동 자체가 소멸되는 현상들이 관찰되고 있다는 것.

실제로 2017년부터 패션분야 한국 브랜드를 집중적으로 선점하며 한국 기업의 디자이너 브랜드들에게 큰 피해를 안겼던 S유한공사의 경우 앞선 53건의 대규모 공동소송의 승소결과가 나오기 시작한 지난해부터 신규 상표선점 활동이 급격하게 축소됐다.


유 대표는 “현재도 중국에서 신규 상표브로커는 계속 나오고 있는데, 한국 기업들의 이러한 연합 대응을 통해 그간 악의적 상표권 선점 때문에 중국 진출이 지연되거나 좌절되었던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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