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특별기고] AC(After Corona)시대 대비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9 17:09

수정 2020.04.19 17:09

[특별기고] AC(After Corona)시대 대비를

지난 1997년 12월 27일 뉴욕타임스는 '외국 바이어들에 한국 기업은 먹기에 알맞게 익었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사실 금융위기 상황에 몰린 우리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를 받아 금융시장 전면 개방은 물론 알짜 기업까지 외국에 팔 수밖에 없는 수모를 겪었다.

22년여 지난 지금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어려운 상황에 다시 놓이게 됐다. 코로나19는 결국 극복되겠지만 상처를 남기고 떠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경제다.
정부가 갖은 정책을 쏟아내도 겁에 질린 경제는 언제 살아날지 알 수 없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1997년의 데자뷔를 느끼는 것은 본인뿐만이 아닐 것이다. 1997년에는 외국자본이 국내 금융을 노렸다면, 이제는 우수한 기술을 보유한 우량기업을 사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중국은 막대한 정부 자금을 등에 업고 떨어진 주가와 원화가치를 지렛대 삼아 유동성에 타격을 입은 국내 핵심기업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투자받기가 더욱 어려워진 기업들은 이런 투기자본의 유혹에서 더욱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더군다나 기술탈취가 목적인 외국자본의 인수합병(M&A)이라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것은 기업이 팔리는 것뿐만 아니라 보유한 기술역량과 지식재산권,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팔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사례를 보면 M&A 등으로 인해 외국기업에 인수된 후 기술자료를 모두 빼앗기고 버림받은 기업이 흔하다. 중국 BOE는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하이디스를 2002년에 인수, 하이디스의 기술을 바탕으로 LCD 공정라인을 대폭 확대하면서 급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4331건의 기술자료가 하이디스에서 BOE로 유출된 것을 확인했다. 쌍용차도 2005년 중국 상하이차의 M&A와 관련해 먹튀 논란이 불거졌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7일(현지시간) "차이나머니가 해외기업 쇼핑에 시동을 걸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푸싱그룹이다. 실제로 푸싱그룹의 계열사인 상하이 유위안 투어리스트 마트 그룹은 지난달 20일 프랑스 보석 브랜드인 줄라 지분 55.4%를 2억1000만위안(360억원)에 인수했다. 중국 외환관리국이 90% 지분을 보유한 국영투자펀드 CNIC도 인도 최대 재생에너지 기업인 그린코그룹 지분 10%를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스톱'된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경제질서를 어지럽히는 일명 외국계 '먹튀' 자본에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유럽의 일부 국가는 이미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주세페 콘테 총리는 지난 6일 외국 인수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전략 산업의 해외거래를 제한하는 조치를 은행·보험·헬스케어·에너지 등 주요 산업에 확대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스페인도 외국인 직접투자에 대한 새로운 규제방안을 마련했다고 한다. 독일도 국가적 이해에 상반되는 M&A 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새로운 규정을 도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히 기업이 보유한 지식재산권을 보호하는 것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 경제위기에 노출된 기업들은 지재권 보유비용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우리를 먹여 살릴 것은 기술뿐이다. 핵심기술 보유기업을 선제적으로 보호해 미래먹거리를 지켜야 한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은 '농부는 보릿고개에도 씨앗은 베고 잔다(農夫餓死 枕厥種子)'고 언급했다. 우리나라에 있어 종자는 기업들의 기술력일 것이다.
지금 국난을 극복하는 것을 물론 미래 우리 먹거리를 지키는 일 역시 우리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이광형 KAIST 바이오뇌공학과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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