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임금제는 산업계 전반에서 여전히 위용을 뽐내고 있다. 도입 목적인 임금 계산 방식의 '편의'가 아닌 임금을 덜 주기 위한 '체불'을 목적으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해 회원사 600곳(응답 195곳)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기업의 57.9%가 포괄임금제를 운용했다. 대상은 주로 사무직인데, '기업 관행'(25.7%)이나 '인건비 부담을 줄이려고'(8.0%)란 응답이 다수였다. 사무직은 임금 계산이 어렵지 않아 포괄임금제 적용을 해서는 안되는 대표적인 직군이다.
정부도 2년 전과 달리 제도 개선 의지가 꺾인 것일까. 고용노동부는 2017년 10월 내놓기로 한 제도 개선안을 30개월째 내놓지 못했다. 고용부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취합하고 있다"고 하지만, 직무 유기란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바뀐 점이 있다면, 법원 판결이다. 노사 합의 여부를 깐깐하게 보는 것은 물론, 임금 산정이 어렵지 않은 경우엔 포괄임금제 자체를 무효로 보는 추세로 바뀌었다. 기업이 관행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운용하다간 줄소송을 당할 수 있게된 것이다. 실제 한국항공우주(KAI)는 2006년부터 포괄임금제를 운용하다 소송을 낸 직원 1428명에게 최근 1심에서 패소해 188억원을 배상할 처지에 놓였다. 이 회사는 연장근무 대가로 시간당 1만원 수준의 교통비를 지급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1심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까지 추가 소송을 내는 등 소송이 이어지고 있다.
2년 전에 쓴 기자수첩에서 나쁜 포괄임금제에 대해 '백반 값을 주고 소고기를 사오라는 불합리한 관행'이라고 쓰고, '바뀔 때도 됐다'라고 했다. 2020년, 노사 간 상생을 깨고 소송이란 최악의 갈등 상황까지 번지게 하는 이 관행, 정말 바꿔야할 때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산업부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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