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지난해 미국과 무역전쟁 위기에서 중국과 손을 잡았던 유럽이 코로나19 사태로 외교 및 경제면에서 중국과 '거리두기'에 나설 전망이다. 중국이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상황에서 보여준 불투명성과 무성의한 태도에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21일(현지시간) 정치 관계자들을 인용해 바이러스 사태를 겪은 유럽이 중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국제 관계를 보다 다각적으로 바꾸려한다고 전했다. 유럽의회에서 대(對)중국 관계 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는 라인하르트 뷔티코퍼 전 독일 녹색당 공동 대표는 블룸버그를 통해 "중국은 최근 몇 달간 유럽의 지지를 잃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사실을 제대로 알리기보다 체제 선전만 앞세워 매우 공격적인 외교 행보를 보였다고 비난했다. 뷔티코퍼는 중국이 책임감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며 "편향적인 태도로는 협력을 만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전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바이러스의 기원에 대해 보다 투명하게 공개하면 이를 통해 모두가 세계 모두가 배우게 되어 더 나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가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영국 응답자 74%가 중국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비난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유럽의 반중감정은 중국이 지난달부터 코로나19 극복 이후 대대적인 대외 원조에 나설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심각하지는 않았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유럽연합(EU)은 지난달 19일 발표에서 중국이 220만개의 마스크와 5만개의 코로나19 진단 키트를 보내줬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같은달 14일 보도에서 중국 외교관들이 독일 관료들을 초청해 중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한 긍정적인 발언을 부탁했다며 중국이 의료 원조로 선전 활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스페인과 체코,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에서 수입한 방역 제품에 불량품이 많다며 리콜을 선언했다. 이 와중에 프랑스 주재 중국 대사관은 이달 초 프랑스 요양원 직원들이 환자들을 방치해 죽게 만들었다는 가짜뉴스를 홈페이지에 올려 프랑스인들의 분노를 샀다.
블룸버그는 앞서 중국의 경제침투를 경계하던 유럽 각국이 코로나19 사태 이후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면서 홀로서기를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유럽 순방을 통해 유럽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참여를 호소하며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마가레타 베스타거 EU 경쟁분과 위원장은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중국이 팬데믹 상황에서 유럽기업 사냥에 나서기 전에 각국 정부가 민간기업 주식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U 무역장관들은 지난 16일 회동에서 중국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며 무역 다각화를 강화하자고 합의했다. 블룸버그는 유럽이 마스크뿐만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5세대(5G) 이동 통신 등 중국의 주요 수출품을 수입하는데 보다 신중해졌다고 분석했다.
범유럽 싱크탱크 유럽외교관계협회(ECFR)의 얀카 오에르텔 아시아프로그램 국장은 중국이 만약 시장 개방을 확대하고 해외 기업에 대한 차별을 줄인다면 다시 유럽의 신뢰를 얻을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다만 "중국이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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