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의 영화가난다 13] <피부색깔=꿀색>
[파이낸셜뉴스] 곧 다가올 가정의 달. 5월 달력을 들춰보면 11일 아래에 '입양의 날'이라 적힌 작은 글씨가 보일 것이다. 이 땅에서 태어난 많은 아이들을 바다 건너 저 멀리 입양보내고 있는 2020년의 대한민국이 입양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우리들이 입양의 날을 바라보는 방식과 상당히 닮아있다.
알지 못하고 알더라도 관심이 없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 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과 가정의날, 부부의날까지 달력 곳곳에 가족의 소중함을 되새길 수 있는 기념일들이 자리잡고 있다. 우리집의 경우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과 여동생의 생일까지 있다. 그야말로 시끌벅적한 가정의 달이다.
다른 가정의 사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더라도 주변 공원과 유원지에 부모의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어린 아이들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가정의 달이라고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니다. 어딘가는 불행한 이들이 존재한다. 수십 년 전 벨기에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 출신 소년 융도 그런 아이 중 하나다.
여러 아이들을 입양해 기르는 벨기에 국적의 부모에게 처음으로 입양된 동양인 입양아. 전정식이란 이름을 가진 한국의 고아 소년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벨기에로 날아가 생면부지의 부모에게 입양되고, 다시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삶을 살아가기까지,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감독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기법을 번갈아 사용해 담아낸 <피부색깔=꿀색>은 서양인들 사이에서 동양인 입양아로 살아갔던 한 소년의 성장기를 그린다. 특히 영화는 소년이 겪어야만 했던 방황과 도피의 순간을 파고든다. 안으로는 가족으로부터 안정감을 찾지 못하고, 밖으로는 자신의 '다름'으로부터 끝없이 상처받은 한 소년의 고통이 곧 영화의 8할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벨기에의 어느 도시에서 완전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누구로부터도 위안을 얻지 못했던 소년이 할 수 있는 저항이란 기껏해야 현실부정과 반항, 그리고 자기학대뿐이다. 잡지에서 일본문화를 접하고는 스스로를 일본인으로 여기며 가족들과의 대화를 거부하다 집을 나오는 것부터, 매일 같이 쌀밥에 타바스코 소스를 뿌려먹고 건강을 망치는 등 온통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학대하는 일뿐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그런 융이 자존감을 되찾는 계기는 '그림'이다. 자신이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세계를 만나며 그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자신을 낳은 부모, 자신이 태어난 나라로부터 버려지다시피 떠나보내졌지만 그림을 통해 조금씩 자존감을 회복한 융은 마침내 자신이 괴롭혔던 것들로부터도 해방돼 스스로를 인정하고 문제를 직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는 인정 받는 만화가가 된 융. 그런 그조차 자전적 영화를 만들기 전까지는 한국 땅을 밟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는 사연이 너무도 안쓰럽게 다가온다.
영화는 한 아이가 자신의 문제를 극복하고 마침내 성장하는 성장드라마라기보단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돌아보고 그에 대해 고발하는 고발영화에 가깝다.
한 해에도 수천 명의 고아들을 해외로 '수출'하는 한국의 모습과 그렇게 보내진 아이들이 직면했던 삶에 대해 그려내는 고발성 짙은 영화, 하지만 영화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복원하는 자전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고발과 고백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마침내는 그 두 얼굴을 하나로 겹쳐내는 성숙한 영화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영화가 더욱 감동적이며 가슴아프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감독은 스스로 '이 영화는 스스로에 대한 받아들임과 용서에 대한 것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영화를 통해 한국의 국외입양 문제를 되돌아 보고자 합니다'라며 개인적인 차원의 극복과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제기라는 영화의 두 얼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2020년의 한국은 여전히 해외입양을 가장 많이 보내는 나라 가운데 하나다. 지난 60여 년간 해외로 입양된 한국 아이들만 해도 약 15만 명으로 서울 인구의 2%에 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는 입양을 꺼리는 사회풍토는 물론이고 미혼모의 급격한 증가와 사회안전망의 미구축 등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연관돼 발생하는 심각한 사회문제다.
지난 2012년 개정된 입양특례법은 친모가 출생신고를 한 아이들에 한해서만 입양을 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오히려 더욱 많은 아이들을 버려지게 만든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당신들은 이겨낼 준비가 되었나요?
버려지는 아이들의 수는 많은데 아이를 입양하는 가정은 적다. 그래서 해외입양을 보내는 것 말고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줄 방법이 없다. 바로 이것이 해외입양의 명분이었다.
하지만 감독은 해외입양아들이 겪는 문제를 경험적으로 드러낸 이 영화를 통해 더는 과거와 같은 방식의 무차별적 해외입양이 이루어져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는 나아가 해외입양아뿐 아니라 미혼모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언급하며 이 모두를 고려해 정책적인 차원에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입양특례법과 같은 근시안적 대책들은 당사자들에게 더한 고통만을 안겨주었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으며 그 상당수가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사회는 입양문제를 직시하고 해결책을 찾는 대신 당사자들의 고통을 그저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본다.
영화 속 융이 자신의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도피했을 때 그는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리고 말지 않던가. 그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문제와 직면해 그와 싸웠던 순간 덕분이다. 이를 우리 사회에 적용해 본다면 어떨까? 해외입양과 관련한 문제들을 직시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만이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하지 않고 우리 사회의 병든 부분을 치유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언제고 잊혀지고 버려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감추고 살아온 아이, 낮은 자존감에 무심코 던진 말에도 쉬이 상처입었던 소년, 어엿한 만화작가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표현하는 중년 사내. 융은 여전히 벨기에와 한국 사이의 어드메쯤에서 방황하고 있는 것만 같다.
이미 6년 전, 한국이 낳고 한국이 떠나 보냈던 그 아이가 제가 만든 영화를 들고 돌아와 우리 사회에 물음을 던졌다. 그 후 한국은 과연 얼마만큼 나아졌나. 되돌아볼 일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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