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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고진영, "할아버지는 나와 처음부터 특별했다"..LPGA홈피에 '할아버지와 나' 글 올려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05 09:40

수정 2020.05.05 09:40

고진영. /사진=fnDB
고진영.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할아버지는 내게 '진영'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처음부터 할아버지와 나는 특별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세계랭킹 1위 고진영(25·솔레어)이 5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홈페이지에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공개했다. LPGA는 많은 선수들의 1인칭 시점 이야기들을 홈페이지에 게재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할아버지와 나'라는 제목의 글에서 고진영은 2년 전 알츠하이머병과 싸우다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그리워했다.
다음은
고진영의 글 전문이다.

제목:할아버지와 나

사랑하는 사람이 하나의 기억이라도 더 지키기 위해 힘겹게 싸우는 모습을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한 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은 고통스럽다. 또 언젠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 이 힘겨운 시간을 마주하는 것은 더 그렇다. 내게 있어 가장 큰 팬이었던 할아버지는 알츠하이머병과 맞서 싸우며 만년을 보내셨다. 잔인한 도둑이 매일매일 조금씩 할아버지의 기억을 빼앗는 일은 슬프고 지켜 보기 힘들었지만, 병마에 맞서 싸우는 할아버지의 용기와 위엄을 보며 오히려 큰 영감을 받기도 했다.
할아버지는 내게 '진영'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 나는 할아버지의 첫 손녀였고, 처음부터 할아버지와 나는 특별했다. 어릴 때 기억 속 할아버지는 마루에서 함께 놀아 주시고, 안아 주시고, 또 나를 웃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온 대부분의 LPGA선수들과는 조금 다르게 부모님이나 조부모님의 영향으로 골프를 시작하진 않았다. 아버지는 젊었을 때 잠시 권투를 하신 적이 있고, 어머니는 취미로 골프를 시작하셨지만 나를 억지로 골프장이나 연습장으로 데려가진 않으셨다. 초등학생 무렵에 아빠와 나는 우연히 US여자오픈에서 박세리 프로님이 우승을 했던 장면을 재방송으로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나도 골프를 해보고 싶어요"라고 말을 했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같은 날에 골프클럽을 처음으로 휘두르게 됐다.
나는 골프의 정확성, 움직임, 아름다움, 집중력 등 게임과 관련된 모든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항상 가족의 사랑과 지지를 받았다. 아빠는 골프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팁은 못 주셨지만, 운동 선수 출신으로서 내가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경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영향을 주셨다.
항상 내게 ‘무엇을 하든 체력이 성공의 열쇠’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아빠와 나는 오랜 기간 줄넘기를 함께 했다. 나는 골프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격투기 선수가 타이틀전을 준비하는 것처럼 줄넘기를 열심히 했다. 초등학교 때 전교생이 참가하는 줄넘기 대회를 열었는데, 내가 이 대회에서 일등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빠 덕분이었다.
10대 시절에는 전세계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경기하는 것을 꿈꾸며 열심히 실력을 키웠다. 하지만 나 역시 가족들을 사랑했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여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열여덟에 프로가 된 후, 다행히 KLPGA 대회 출전 자격을 얻게 됐고 부모님과 나는 한국에서 경기를 하는 동안 함께 다닐 수 있었다.
KLPGA 루키 시즌인 2014년, 슬프지만 할아버지는 함께 있을 때에도 더 이상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다. 할아버지는 이전처럼 친절하고 온화하셨지만 더 이상 가족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내가 기적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은, 내가 TV에 나타났을 때 할아버지께서 나를 기억하셨다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TV로 골프 대회를 보시며 내가 방송에 나올 때마다 나를 응원하셨다고 한다. 그 덕분이었는지 나는 KLPGA에서 열 번 우승을 했고, 할아버지는 우승 장면을 TV로 지켜 보실 수 있었다.
이후 2017년, 당시 나는 인천에서 열린 LPGA투어 대회인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 우승으로 인해 나와 가족들에게는 LPGA투어에 참가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 확실해 졌다. 처음 프로가 됐을 때, 나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미국에서 경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전세계를 돌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곳을 여행하는 일은 굉장한 부담이었다.
하지만 스물 하나의 나는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 처음에 부모님은 걱정을 많이 하셨다. 세상 어떤 부모님이라도 그러셨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루키 시즌에 처음으로 참가했던 ISPS 한다 호주여자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비로소 부모님은 안심하셨다. 내가 적응을 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준비가 되어있었다.
2018년 4월, 나는 아직 그 소식을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롯데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 하와이 오아후에 있던 때, 나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게 됐다.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별은 더욱 힘들다. 소식을 듣자 마자 나는 가족과 함께 하기 위해 곧바로 한국으로 날아갔다.
미국으로 돌아온 후 롤렉스 올해의 신인상 소감 연설을 포함해, 남은 기간 동안 영어로 내 의사 표현을 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항상 나를 응원해 주시고 사랑해 주셨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내 가장 큰 팬이었던,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 말이다.
내게 있어 이제 LPGA투어는 제2의 고향이 됐다. 선수, 캐디, 관계자와 스태프들이 서로 얼마나 가깝고 힘이 되어주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친구 이상이며, 마치 한 가족같다. 투어에서 두 시즌을 소화하면서 좋은 활약을 보여줄 만큼 운도 좋았다. 신인상을 받은 후, 이듬해에 첫 메이저 대회인 ANA 인스퍼레이션과 에비앙 챔피언십 등 메이저 대회 2승을 포함해 3승을 거뒀고 올해의 선수상과 롤렉스 아니카 메이저 어워드 수상의 영광도 누렸다.
하지만 우승보다 중요한 점은 남은 인생 동안 내 곁에서 함께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발전시킨 것이다. 처음 프로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때, 나는 10년 정도를 뛰고 스물여덟에 은퇴해 가정을 꾸리겠다고 계획했다. 오는 7월에 나는 스물다섯이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골프를 떠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상황은 변한다. 삶은 진화한다. 나는 투어생활을 하며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좋아한다. SNS 활동을 통해 미국과 유럽 팬들로부터 많은 호감과 댓글을 받았는데, 그건 내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 아직 완벽하게 내 뜻을 표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LPGA투어에 있는 대부분의 한국 선수들처럼, 나 역시 사람들과 함께 하며 나를 알게 하고 싶고 진짜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나는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함께 라운드하는 동료 선수들 그리고 팬들과 원활하게 의사 소통을 할 수 없어 아쉬웠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나는 모든 팬들이 스코어보드의 숫자나 진열장의 트로피보다 ‘인간 고진영'을 더 많이 봐주길 바란다. 나는 누군가의 친구이자 딸이며 손녀 그리고 골퍼다.
만일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봐 준다면 내 인생과 선수로서의 삶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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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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