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마리킴의 아이돌, 이번엔 명화로 들어가다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1 16:46

수정 2020.05.11 16:47

캐릭터로 말하는 두 작가
마리킴 & 에디 강
마리킴 '수월관음도'(2019) 가나아트갤러리 제공
마리킴 '수월관음도'(2019) 가나아트갤러리 제공
에디 강 '잇 윌 비 올라잇'(2019) 파라다이스ZIP 제공
에디 강 '잇 윌 비 올라잇'(2019) 파라다이스ZIP 제공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는 그의 소설 '백치'에서 주인공 미슈킨 공작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했다. 도스토옙스키의 그 말이 현실에서 실제 작동한다 단언할 수 없지만, 적어도 현재 미술 세계의 한 부분은 캐릭터가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가볍고 상업적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캐릭터가 이젠 컬렉터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어서다. 작가의 분신과 같은 캐릭터가 작품 속에서 던지는 메시지와 스토리에 현대인들은 위로를 받기도 한다. 전염병의 창궐로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이때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두 전시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유다.

■4년만에 국내서 개인전 여는 마리킴, 생명의 나무·관음도 등 명작 오마주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갤러리 전시장 곳곳에 전세계에서 널리 알려진 명화들이 걸려있다.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가 번쩍이며 전시장에 들어선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뭔가 좀 다르다. 가까이서 보니 관능적인 여인이 서 있던 자리에 커다란 눈망울의 인형같이 귀여운 캐릭터 '아이돌(Eyedoll)'이 대신 서 있다. 전시장 2층으로 올라가면 13세기에 그려져 현재 일본 도쿄 센소지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불화 '수월관음도'의 관음보살도 아이돌의 얼굴을 하고 있다. 이 '아이돌'은 작가 마리킴이 지난 2007년부터 그려온 것이다. 마리킴은 지난해 미국 LA에서 처음 발표한 '마스터피스'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국내에서 4년만에 개인전 '마스터피스-임모탈 비러브드' 전시를 진행중이다.

마리킴은 그간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끊임없이 확장시켜왔다. 컴퓨터에 의해 가공된 이미지가 갖는 무한한 복제성에 주목해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하는 기존의 회화와 선을 그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분신과 같은 아이돌 캐릭터의 화장과 옷을 갈아입히는 과정을 반복하며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그간의 작품 활동과 조금 결이 다르다. 컴퓨터로 그린 이미지를 캔버스와 한지 위에 출력해 작가 자신의 손을 더했다. 명화의 기법처럼 물감을 덧칠하고 금박을 붙이는 과정을 통해 또 다른 마리킴만의 오리지널리티가 강화됐다.

마리킴은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피카소의 말을 인용하며 "이번 전시의 모든 작품들은 세계 명화들을 오마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작의 이미지를 차용하고 최대한 비슷하게 표현했지만 내 작품 특유의 얼굴을 그려 재생산한 것이기에 훔친 것이라 볼 수도, 훔친 것이 아니라 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관음도의 재해석이다. 보통 남성으로 표현되는 관음보살이 여성으로 표현됐다. 마리킴은 "중생을 구제하고자 하는 평화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관음은 한국에선 남성적으로 표현돼 왔지만 실상 신이기에 성이 없다"며 "태국과 인도에서 여성적으로 표현된 것을 생각했고 또 서양의 모나리자에 비견한 아시아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수월관음도에 상상력을 더해 현대적 미술로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31일까지.

■에디 강 개인전 '위 윌 비 올라잇', 유기견 강아지·상상 속 설인 등 작가 분신 캐릭터 등장

서울 장충동의 복합문화공간 '파라다이스 ZIP'에서는 에디 강 작가의 개인전 '위 윌비 올라잇'전이 진행중이다. 다양한 협업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고있는 에디 강은 자신의 정체성이 투영된 다양한 캐릭터와 추상적 이미지를 결합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는 침체된 사회 분위기 속 움츠러든 모두를 향해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를 담고 있다. 학대와 파양의 상처가 있지만 가족이 된 이후 사랑으로 치유된 유기견 강아지 '러브리스'와 버스에 버려졌다 가족이 된 구김살 없는 유기견 강아지 '믹스', 상상속 설인 '예티' 등 그의 분신인 캐릭터들이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전시장 곳곳의 화려한 색감의 캔버스들 위에서 불쑥 튀어나와 관객들에게 다정하게 인사하는 듯하다.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함, 소중한 꿈을 환기시키고 위기를 이겨내는 희망을 심어주고자 하는 작가의 예술관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신작 속 캐릭터들은 작가의 상황과 감정을 대변하며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에디 강은 "나에게 창작은 순수한 마음을 되찾고 잊혀진 것들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마법의 주문과 같다"며 "이번 전시를 통해 마음 속 불안과 상실감을 잠시나마 잊고 스스로 긍정의 마법을 거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6월 27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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