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권대희 사건 유족 "야만적 수술대에서 아들 죽었다" 절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1 16:41

수정 2020.05.23 17:02

21일 권대희 사건 3차 공판 열려
원장 장모씨 "사과했지만 안 받아줘"
[파이낸셜뉴스] 서울 소재 A성형외과에서 이뤄진 ‘공장식 수술’로 중태에 빠져 끝내 숨진 고 권대희 성형사망 사건 1심 공판에서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60·여)가 의료진을 엄단해달라고 호소했다.

검찰이 상해나 사기는 물론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의료법 위반 혐의도 적용하지 않은 가운데, 출석한 피고인들은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2016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고 권대희씨의 25번째 생일을 가족들이 축하하고 있다. 고 권씨 유족 제공.
2016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고 권대희씨의 25번째 생일을 가족들이 축하하고 있다. 고 권씨 유족 제공.

■권씨 유족 "소송 떠밀려서 왔다"

21일 오후 3시 30분, 서울중앙지법 형사8단독 최창석 부장판사는 권대희 사건 3차 공판을 속개했다. 이날 공판에선 권씨 어머니 이씨가 변론기회를 얻어 30여분 간 의료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호소했다.

이씨는 “아들이 죽은 영상을 보기가 너무 무서워 처음엔 소송으로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반성하는 기미가 있으면 관용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의료진의 얼굴도 보기 힘들고 원장이 도리어 소송으로 가자고 해서 떠밀려서 온 것”이라고 발언했다.


이씨는 이어 “안면윤곽술은 출혈량이 300~400cc만 되어도 굉장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한다”며 “대희는 수술 중 3500cc 출혈이 발생했다”고도 지적했다.

앞서 검찰은 원장 장모씨와 신입의사 신모씨, 마취과의사 이모씨 등 A성형외과 전·현직 의사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이들은 지난 2016년 안면윤곽 수술을 진행하다 필요한 조치를 적절히 취하지 않아 환자인 권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를 받는다.

권씨 수술 당시 집도의인 장 원장은 권씨에게 고지한 것과 달리 수술을 끝까지 책임지지 않고 다른 수술을 위해 자리를 비우는 등 ‘공장식 수술’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은 치사량을 훌쩍 넘는 3500cc의 피를 흘린 권씨에게 단 한 차례도 혈액을 수혈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 결과 이 병원에선 동시에 3건의 수술이 진행됐으며, 의료진은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회복실로 올라가지 못한 권씨를 수술실에 남겨두고 퇴근했다 상태가 악화된 늦은 밤에야 병원으로 돌아온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대해 이씨는 “피고인은 수술 전 찾아온 권대희에게 ‘14년 무사고’ 사실이 맞고 본인이 직접 수술을 한다고 확인을 시켜줬다”며 “원장은 이를 믿고 수술대에 누운 대희의 수술을 끝까지 하지 않고, 신입 의사한테 (환자) 신체를 양도하고 수술실을 나갔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어 “수술을 이어받은 이 의사도 옆 수술실에서 다른 환자 2명이 동시수술중이라 간호조무사한테 신체를 양도하고 또 수술실을 나갔다”며 “이 동안 권대희는 3500cc 과다출혈로 끝내 숨졌다”고 발언했다.

발언 도중 감정이 복받쳐 수차례 말을 멈춘 이씨에게 최 판사는 “감정을 추스르고 천천히 말하라”고 다독였다.

수술대에 누워있는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간호조무사들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CCTV와 의무기록지 교차 분석을 통해 당시 권씨 혈압이 80정도로 위험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권대희씨 유족 제공.
수술대에 누워있는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간호조무사들이 휴대폰을 보고 있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는 CCTV와 의무기록지 교차 분석을 통해 당시 권씨 혈압이 80정도로 위험 상태였다는 사실을 밝혔다. 권대희씨 유족 제공.

■"사과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

공판이 끝난 뒤 원장 장씨는 “왜 사과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사과를 했지만 받아주지 않았다”며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장씨 측 변호인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조차 다투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상태다.

이씨가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며 처벌해줄 것을 요청한 신입의사 신모씨와 그 변호인은 기자의 질문에 일절 답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한편 권대희 사건은 서울고등법원의 판단에 따라 재판의 양상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의료진을 처벌이 크지 않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만 기소한 사실에 불복한 유족이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재정신청은 검찰 기소의 당부를 가리는 최종 절차로, 검찰은 전문 감정기관 다수와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에도 불구하고 쟁점이 된 ‘무면허 의료행위’ 등의 혐의를 기소하지 않은 바 있다. <본지 2월 1일. ‘[단독] 검찰, '권대희 사건' 전문감정과 정반대 결론... '봐주기 수사' 의혹’ 참조>

권대희 사건 다음 공판은 8월 11일 오후 2시 30분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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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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