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1) 박승주 기자 = 60여년을 함께 산 동거인이 위독해지자 동거인 통장에 있는 거액의 돈을 인출한 혐의를 받는 80대 여성에게 1심에 이어 2심도 유죄를 인정했다.
피고인은 계좌에서 꺼낸 자금의 실소유자는 피해자가 아닌 자신이라 횡령죄가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판사 오석준 이정환 정수진)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된 김모씨(89)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25일 밝혔다.
김씨는 20대였던 1950년대에 A씨를 만나 동거했다. 두 사람은 함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재산을 모아 토지와 건물을 샀고, 1970년대부터는 건물 등 부동산 임대업으로 돈을 벌었다.
A씨가 폐암으로 위독해지자 자신이 관리하던 A씨의 계좌에서 13억여원을 인출해 개인용도로 썼다가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세금을 절약할 목적으로 A씨의 명의를 빌려 계좌를 개설한 것일 뿐"이라며 자신이 자금의 실소유주이므로 횡령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1심에 이어 2심도 실명이 확인된 계좌에 있는 자산은 명의자의 소유로 추정하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A씨의 계좌의 금융자산은 A씨의 소유로 봐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인출한 자금은 모두 A씨의 재물이고 김씨도 A씨 소유의 재물을 인출한다는 사정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인정할 수 있다"며 "김씨의 횡령 범죄사실을 인정한 원심판결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구체적으로 "김씨가 여러 해에 걸쳐 입출금 거래를 A씨 대신 처리했지만, 은행 직원들이 'A씨의 의사에 기초한 거래인지'를 확인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은행들은 계좌의 예금채권자를 김씨가 아닌 A씨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김씨는 A씨 명의로 취득한 재산 형성에 A씨가 전혀 기여한 바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오히려 오랜 기간 함께 생활하면서 재산 형성이나 유지, 보존 등에 A씨가 일정한 기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김씨는 A씨 명의의 각 계좌가 A씨를 피상속인으로 하는 상속재산에 포함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A씨가 사망하면 예금 출금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해 예금을 인출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김씨는 2016년 3월부터 A씨가 사망한 5월까지 약 한 달 반 동안 13억3770만원을 인출했는데 이러한 거래는 기간, 규모, 금액 등에 비춰보더라도 김씨가 수년간 A씨 명의 계좌를 사용한 일반적인 거래와 다르고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설령 김씨가 A씨 계좌에서 예금을 임의로 인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더라도, 이는 권한에 대한 김씨의 일방적인 해석에 불과하다"며 "횡령의 범죄사실에 대한 김씨의 고의가 부정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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