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43년 만에 경주 신라 고분에서 금동 신발 출토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27 11:19

수정 2020.05.27 11:20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43년만에 나온 금동 신발 출토 당시 모습 /사진=문화재청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43년만에 나온 금동 신발 출토 당시 모습 /사진=문화재청
[파이낸셜뉴스] 경주 신라 고분에서 43년 만에 금동 신발이 출토됐다. 발굴 초기 단계여서 앞으로 더 많은 유물이 출토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경상북도 경주시가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주 황남동 120호분' 조사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아직 발굴조사가 초기 단계이지만 금동 신발 등 출토 유물의 중요성을 고려해 27일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사적 제 512호인 경주 대릉원 일원 내에 위치한 황남동 120호분은 일제강점기에 번호가 부여됐으나 민가 조성 등으로 훼손되면서 고분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이에 따라 문화재청과 경주시는 지난 2018년 5월부터 120호분의 잔존 유무와 범위 등을 파악해 앞으로 진행할 유적 정비사업에 기초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발굴조사를 시작했으며, 2019년 120호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20호분의 북쪽에 위치한 120-1호분과 120호분의 남쪽에 위치한 120-2호분을 추가로 확인했다.

발굴조사 결과, 120호분 봉분은 양호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화강암이 풍화해 생긴 마사토를 사용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26.1m,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23.6m 규모로 봉분을 축조했는데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 가운데 마사토로 봉분을 축조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화재청은 120-1호분과 120-2호분은 120호분의 봉분 일부를 파내고 조성되어 있어 120호분보다 후대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120-1호분에서는 쇠솥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출토됐으며 120-2호분의 매장주체부에서는 대체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문화재청은 특히 지난 15일에 120-2호분에 묻힌 피장자 발치에서 금동 신발 한 쌍을 확인했다. 신발은 표면에 'T'자 모양의 무늬가 뚫려 있고, 둥근 모양의 금동 달개가 달려 있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 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는데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신발이 출토된 것은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 조사 이후 이번이 43년만의 일이다. 지금까지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신발은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장사 지내어 보내는 장송 의례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밖에 피장자의 다리 부분에서는 허리띠 장식에 사용된 은판이, 머리 부분에서는 신발에 달린 것처럼 여러 점의 금동 달개가 겉으로 드러나 있는 것도 확인했다. 앞으로의 발굴조사는 이 달개가 머리에 쓰는 관이나 관 꾸미개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될 예정이다.

부장칸에서는 금동 말안장과 금동 말띠꾸미개를 비롯한 각종 마구 장식, 청동 다리미, 쇠솥, 다양한 토기류 등이 출토됐다.

발굴조사단은 앞으로 120-1·2호분의 조사를 완료한 후 아직 내부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120호분의 매장주체부도 본격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다. 120호분은 120-1·2호분에 비해 봉분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보다 위계가 더 높은 유물이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황남동 120호분은 발굴조사가 진전되는 상황을 고려해 앞으로도 현장 설명회 등을 통해 꾸준히 조사 성과를 공개하는 자리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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