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간호사 실태
감염 위험 등 열악한 환경에도
희생·봉사정신 등으로 일하지만
강도 높은 노동·부당처우에 좌절
현장 떠나는 간호사 갈수록 늘어
감염 위험 등 열악한 환경에도
희생·봉사정신 등으로 일하지만
강도 높은 노동·부당처우에 좌절
현장 떠나는 간호사 갈수록 늘어
#. 경기도 종합병원에 근무 중인 간호사 B씨는 두벌뿐인 근무복을 집에서 번갈아 세탁한다. 코로나19로 감염에 민감하지만 상하관계가 철저한 간호사 직군 특성상 이의제기가 쉽지 않다. 선배들에게 말해봐도 돌아오는 건 "원래 그렇다"는 답뿐이다. 병원에서 환자들과 가까이 접촉할 일이 많은 B씨는 비닐로 꽁꽁 싸서 가져온 근무복을 따로 세탁하지만 혹여 4살 딸에게 피해가 갈까 걱정이다.
흔히 의료를 노동집약적 산업이라고 일컫는다. 첨단 의료장비와 수술법, 신약개발에도 불구하고 의사와 간호사 등 전문 인력의 노동 없이는 제대로 된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간호사 1명이 담당하는 환자수가 적어지면 의료의 질 역시 급격히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간호인력 확충이 의료의 질을 담보한다고 평가되는 이유다.
■애써 키워도 모두 떠난다·
28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와 한국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에 따르면 한국 간호사들이 병원을 등지고 있다. 매년 OECD 최고 수준의 간호인력을 배출하면서도 가장 낮은 수준의 간호인력이 의료현장에 남고 있는 나라인 것이다.
강도 높은 노동과 열악한 근무환경, 부당한 처우가 간호사들이 병원을 등지는 주된 이유다. 코로나19 자원봉사자 4000여명 중 전직 간호사 상당수가 포함됐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의지가 있는 간호인력조차 병원을 등지게끔 하는 구조가 문제로 지적된다.
유능한 간호사는 거저 양성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이뤄지는 전문교육과 현장에서의 실습, 연차를 쌓아가며 얻는 임상경험이 고스란히 간호사의 실력이 된다.
길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후배가 들어와도 조금만 연차가 쌓이면 나가버리고 답답하다"며 "병원이 경력 있는 간호사들을 양성해야 하는데 비용 면에서 도움이 안 되다보니 그럴 의지가 없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열악한 근무환경은 간호사들이 떠나는 주요한 이유다. 이대서울병원 한 간호사는 "최근에 간호사 인력 감소로 수익을 실현하겠다며 간호등급을 1등급에서 2등급으로 내려 병상수는 늘었지만 병동 인력은 줄었다"며 "우리 팀은 대다수가 거동 못하는 환자를 18~20명씩 보고 있어 부담이 크다"고 전했다.
이는 고스란히 의료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진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지난해 퇴직했다는 전직 간호사는 "공부한 시간까지 포함하면 10년이 넘는데 이렇게 그만두는 건 나 하나만이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아닌가 싶다"면서 "간호사 사회가 업무나 분위기 모두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강요하는데, 그만큼 대가는 많지 않아 조금이라도 젊을 때 다른 일을 해보자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언제까지 기적에만 기댈 건가
간호사 이탈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에서 간호사 자격을 가진 인원은 37만4990명이지만 실제 간호사로 활동하는 사람은 18만4497명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OECD 국가 가운데선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특이한 경우다. 한국보다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사 수가 적은 국가는 슬로베니아, 멕시코, 그리스 정도이다. 이들은 한국에 비해 턱없이 적은 간호사 면허소지자를 배출하고 있다.
한국보다 적은 면허소지자가 있는 다수 국가에서는 활동 간호사는 한국보다 많다. 배출하는 수가 아닌 중도에 간호사를 그만두게끔 하는 구조와 문화가 문제란 뜻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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