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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국회의원의 소신과 당론 사이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4 17:27

수정 2020.06.04 17:27

[여의나루] 국회의원의 소신과 당론 사이
더불어민주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에 기권표를 던진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장이 일고 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강제 당론을 안 지켰기 때문"이라며 당내 이견부터 차단하고 나섰다. 하지만 "금태섭 '당론 위반' 징계는 헌법·국회법과 충돌한다"는 김해영 최고위원을 필두로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언론도 비판이 주를 이룬다. 국회의원의 소신(양심)과 정당의 당론이 충돌할 경우 전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단순히 금 전 의원 개인이나 민주당에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우리나라 국회 운영과 정치풍토 전반에 대해 근본적으로 제기돼온 문제다. 이번 기회에 이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있어야 마땅하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은 이른바 자유위임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국회의원은 국가 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46조 2항)과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않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국회법(114조의2)은 이런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 대표자로서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게 국회의원의 기본적 의무인 것이다. 자유위임의 실현 수단으로 자유투표 혹은 교차투표(cross voting)를 명문화한 게 국회법 조항이다.

반면 정당은 현대정치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정당이 정책과 공약을 제시하고 선택을 받음으로써 정당 중심의 책임정치가 가능해진다. 선거 역시 후보자 개인보다 정당투표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정당이 원내에서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소속원들을 어느 정도 기속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개별 의원들의 백가쟁명만 있다면 정당의 책임 있는 정책 수행은 불가능하게 된다. 당론에 따라 투표하는 정당투표(party voting)를 강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자유투표만 강조하거나 정당투표로만 일관하는 것은 어느 경우든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정치의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키기에 적합한 모델이 무엇인지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한 것이다.

흔히 자유투표(크로스보팅)가 빈번하다고 알려진 미국도 의원들의 투표 시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여전히 당의 입장이다. 작고한 존 매케인 전 상원의원은 공화당 소속이면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추진한 오바마케어 지지자로 유명하다. 공화당이 오바마케어 폐지법안을 냈을 때 뇌종양 수술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상원에 출석, 반대표를 던져 결국 이를 부결시켰다. '당의 경계를 넘는(cross the party line)' 정치를 강조한 매케인 의원이 주목받은 것도 그런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 거의 모든 사안에서 정당투표가 이뤄진다. 지나칠 정도로 당의 기속력이 강한 탓에 개별 의원의 소신은 설 자리가 없다. 당의 이념과 정책에 대한 자발적 동의가 아니라 징계 등 불이익에 대한 강요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최근에는 당 지도부의 규율보다 이른바 팬덤 정치에 따른 외부 압력도 점점 커지고 있다. 공천 탈락의 대가를 치른 금 전 의원을 다시 징계한 민주당의 경우는 정당기속의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우리는 의원 개인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존중하는 방향으로 정당과 국회를 운영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의원 개개인의 각성이 긴요하다. 단순한 당론 추종만으로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으로서 소임을 다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 내부에서부터 자유투표와 당내 민주화의 논의가 활발해진다면 이번 사안이 망외의 결실을 거두게 될 것이다.

노동일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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