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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라 핑계로 대화 끊은 北… 진짜 이유는 체제 결속력 다지기

김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10 18:03

수정 2020.06.10 18:03

삐라 이슈 동원한 속사정
대북 경제제재 장기화에 코로나로 경제난 더해져
내부 불만 달래기 위한남조선 때리기 필요했을 듯
북미대화 국면전환용 분석도
대북삐라엔 어떤 내용
상호비방·체제선전 도구에서 위선자 김정은 등 최고존엄 비난
6·25 70주년 100만장 살포 예고
대남삐라는 진화중.. 트위터·유튜브 활용'디지털화
삐라 핑계로 대화 끊은 北… 진짜 이유는 체제 결속력 다지기

북한이 통신선 차단 등 남북 간 대화 단절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들면서 대북전단의 파급력이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당초 북한이 대화 단절에 앞서 불만을 제기한 것이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일명 '삐라' 살포라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회의 특수성에도 김정은 지도부가 대북삐라를 남북 간 대화 단절의 이유로 선택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 정부나 정치권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 때문에 북한 태도의 더 큰 원인으로 장기간 소강상태를 보이는 북·미 간 비핵화 협상 국면전환용, 또 대북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 경제 여파까지 겹치면서 체제결속용이라는 해석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이 문제 삼고 있는 대북전단과 현재의 남북 간 안보위기 상황의 상관관계를 짚어봤다.

■남남갈등으로 번진 대북전단지

정부와 정치권 안팎에선 현재 북한 안팎의 복잡한 정세뿐 아니라 우선 대북전단을 이번 사태를 불러온 원인 중 하나로 주목하는 시각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북한이 개방사회가 아니라는 특수원인으로 지적된다. 내부적으로 적지 않은 불안요인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대북 삐라가 이번처럼 북한 정부를 극단으로 몬 도화선이 됐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살포 수단으로 일부 사용된 드론 등에서 혐의점을 찾기도 한다. 영공 침해를 넘어 북한 영토 일부에 추락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드론 비행체가 체제 위협의 새로운 불안 요인→북한 지도부의 극단적 선택으로까지 이어졌을 거란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트위터 등을 통해 남한 사회를 겨냥한 디지털 삐라 도발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단지 대북전단 살포만을 비판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팽팽히 맞서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이와 관련, 최근 탈북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에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김 제1부부장은 "'탈북자라는 것들이 수십만장의 반공화국 삐라를 우리측 지역으로 날려보냈다"며 "못된짓 하는 놈보다 그것을 못본 척하거나 부추기는 놈이 더 밉더라"고 비난했다. 그가 관련법을 제정하라며 날선 비난을 하자 우리 정치권은 즉각 반응했다.

여당은 삐라 금지법 제정 준비에 착수했고 야당은 이를 두고 '김여정 하명법'이라며 비아냥댔다. 삐라가 사실상 남남갈등 요인으로도 번지고 있는 셈이다.

■대북삐라에 어떤 내용 담겼길래

한반도 삐라의 역사는 질곡으로 가득했던 남북 분단의 현대사와도 관련이 깊다.

삐라가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건 1945년이다. 해방 이후 제1공화국이 수립되던 당시, 삐라는 좌익과 우익이 대립했던 해방공간에서 서로의 체제를 선전하는 도구였다. 전쟁 이후 냉전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을 비롯해 1990년대까지 남북은 삐라를 체제선전과 상호비방의 도구로 경쟁을 벌였다. 그러던 것이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상호비방 중단을 선언하며 논란의 불씨가 꺼지는 듯 보였다.

그러나 삐라의 운명은 탈북단체를 통해 부활했다.

정치범 수용소 출신들이 만든 탈북단체 '북한민주화운동본부'는 2003년 처음으로 삐라를 제작해 살포했다. 이후 생긴 탈북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은 최근까지 유일하게 삐라 살포활동을 해왔다.

대북전단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지난 5월 31일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살포한 삐라에는 '7기 4차 당중앙군사위에서 새 전략핵무기로 충격적 행동을 하겠다는 위선자 김정은'이라는 문구가 담겼다. 이 삐라는 대북전단 50만장과 소책자 50권, 1달러 지폐 2000장, 메모리카드 1000개와 함께 대형풍선을 통해 북한으로 살포됐다.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여당의 대북전단지 살포 금지법 추진 논의에 대해 "(삐라 살포를 금지하려면) 일단 대한민국 헌법 21조를 파괴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그는 6·25 70주년을 기념해 100만장가량의 대북 삐라를 살포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오늘밤이 될지, 6월 25일이 될지 정확한 시점은 모른다"고 했다. 사실상 삐라 추가 살포 시점이 북한 도발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는 위기상황인 셈이다.

■삐라의 진화 디지털 삐라, 드론을 통한 살포도 향후 확대될 듯

이 같은 논란 속에 기술발달은 삐라의 모습도 바꾸고 있다. 이른바 '인터넷 삐라' 혹은 디지털 삐라의 등장이다.

미국과의 패권경쟁이 한창인 중국은 미국을 비방하는 내용의 인터넷 삐라를 살포하고 있다. 인민일보가 제작하고 산하 소셜미디어와 웨이보 등을 통해 배포하는 방식이다. 중국은 지난 1일 성조기가 그려진 나비넥타이에 흑인이 목졸리는 이미지를 공개하는 등 미국의 인종차별 행태를 비난하며 반미(反美) 정서를 선동하고 있다.

북한도 이 같은 인터넷 삐라에 주력하고 있다. 확인된 것만 2010년 이후 10년째다. 북한은 2010년 당시 노동당 산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운영하는 트위터 계정 우리민족끼리가 간단한 선전문구와 함께 인터넷 주소를 올려놓던 이전 방식과는 달리 '디지털 삐라(전단)'에 가까운 만평과 북한체제를 선전하는 사진을 주로 올렸다. 이제는 각종 체제선전물을 올린 유튜브 영상으로 진화 중이다. 이를 두고 한 대북전문가는 "우리의 대북전단지만 문제 삼을 것이 아니라 북한의 인터넷 각종 선전물 배포 등 디지털 삐라도 문제를 삼아야 한다"고 했다.

당초 대북전단지 살포 문제는 곁가지로 북한의 노림수는 다른 곳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위급 탈북민 출신인 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은 "명분을 비겁하게도 '제일 힘없는 약자 탈북민들'이 보낸 몇 장의 삐라에서 찾고 있어 치졸하다"고 했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빌미로 연일 탈북민들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이날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는 현재 북한체제 상황이 크게 좋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내부 결속력을 다지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했다.

ju0@fnnews.com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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