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횡령 등 불법행위로 지출하게 된 손해배상금은 사업, 수익과 관련한 비용으로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5부(박양준 부장판사)는 주식회사 신한금융지주회사(신한은행)가 남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부과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호제지는 2003년 말 발행주식을 제3자에게 팔아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졸업하기로 했다.
2005년 엄모씨(70)는 이모씨(63)의 명의를 빌려 신호제지의 경영권을 인수했다. 하지만 이씨는 엄씨와 조합원의 의사를 무시하고 명의신탁 된 주식 320만주 중 270만주를 신한은행에 매각했다.
신한은행의 의결권 행사로 적대적 M&A가 이뤄져 엄씨는 국일제지에 경영권을 뺏기고 말았다. 엄씨 등의 고발로 이씨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혐의로 기소됐고, 지난 2009년 징역 3년이 확정됐다. 또 엄씨는 신한은행과 이씨의 불법행위로 경영권을 잃었다며 이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1심은 "신한은행이 이씨와 조합원들의 의사에 반해 주식을 매각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식을 매수하고 의결권을 행사했다. 공동불법행위의 책임이 있다"며 245억원을 배상하라고 판시했다.
다만 2심 재판부는 "구체적인 손해 액수를 증명하는 것이 곤란하다"며 배상액을 150억으로 감액했다. 지난 2016년 대법원은 상고심이 정당하다고 봐 이 판결을 확정했다.
몇년 뒤인 2018년 7월~11월 서울지방국세청은 신한은행에 대해 법인제세 통합조사를 실시하게 됐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신한은행이 2016년 법인세 항목에 민사사건의 확정판결 손해배상금을 비용으로 처리(손금산입)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서울지방국세청은 신한은행 측에 이를 정정하라며 법인세 경정을 고지했다.
지난해 2월, 신한은행은 "민사사건 손해배상금을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손금불산입한 부분은 위법하다"고 조세심판원에 심판청구를 했으나, 기각당했다.
같은해 12월 신한은행 측은 "손해배상금이 손금불산입되는 경우는 극히 예외적으로만 인정돼야 한다"며 "경영권 이전을 통한 안정적 채권회수를 꾀한 것으로 그 행위 동기 자체는 합리적이며, 손해배상금 지급의 원인행위가 사회의 보편적 가치를 현저히 해할 정도가 아니다"며 남대문세무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신한은행 측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먼저 재판부는 "손해배상금은 사회질서를 위반한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의 이행으로 지출하게 된 것으로, 손금에 산입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민사사건에서도 신한은행의 불법행위를 고의나 중과실에 기한 것으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내 상위 대형 금융기관인 신한은행이 규모가 훨씬 작은 기업의 경영권 탈취에 편승해 주주총회 의결권까지 행사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은행업무의 정상적인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며 "신한은행은 다수의 예금자와 관련을 맺고 있어 고도의 주의의무를 통해 건전경영을 유지해야 할 시중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벗어난 매우 이례적인 거래를 단시간 내에 완결했다"고 지적했다.
pja@fnnews.com 박지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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