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항 후 무더기 확진 러시아 화물선
지난 2월 싱가포르 국적선도 무보고
과태료 기준 200만원, 최대도 500만원
예고된 인재, '소잃고 외양간' 멈춰야
[파이낸셜뉴스] “(환자가 있다는 것을)보고 안 하고 들어오면 과태료가 200만원인데, 배에 의심환자는 여러 명이다. 그럼 누가 보고를 하고 들어오나. 더구나 승선검역도 면제인데.” -한국 수출선 현직 2등 항해사 이모씨.
지난 2월 싱가포르 국적선도 무보고
과태료 기준 200만원, 최대도 500만원
예고된 인재, '소잃고 외양간' 멈춰야
최근 부산 감천항에 입항한 러시아 선박 2척에서 선원들이 무더기로 코로나19에 확진되며 구멍 뚫린 항만방역이 지탄을 받고 있다. 코로나19 환자가 꾸준히 발생하는 러시아가 서류 제출로 입항이 허용되는 전자감역 대상이었다는 사실부터, 1주일 전 하선한 선장이 고열 상태였다는 내용까지 항만관리가 총체적 부실에 놓여 있었다는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 2월 본지 보도를 통해 고열과 기침 등 유증상 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고의로 속이고 입항한 외국 선박이 문제가 됐음에도 당국이 후속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이 논란이 된다. 결국 소를 잃고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꼴이 됐다. <본지 2월 8일자 참조 ‘[단독] 구멍 뚫린 항만방역... '발열·기침' 無통보 선박 거짓말 정황’>
■의심환자 통보 않고 들어와도 '솜방망이'
24일 검역법 제9조에 따르면 한국에 입항하는 선박의 선장은 검역소장에게 검역감염병 환자 유무와 상태를 고지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되는데, 검역법 시행령이 정한 과태료는 200만원이다.
법에 따라 부과관청은 사안의 경중을 따져 과태료를 50%까지 가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그 경우 처분할 수 있는 과태료 최대치는 300만원이 된다. 다른 규정을 모두 끌어와도 500만원 이상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미약한 처벌규정은 항만방역에 있어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해 왔다. 이미 지난 2월 아스팔트 운반선 ‘BITUMEN EIKO’호가 기침과 발열 증상을 보이는 선원 3명을 태운 채 보고 없이 입항했으나 방역당국은 본지 보도 이후에야 과태료 200만원 처분만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당시 이 선박은 통신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했음에도 고장을 이유로 보고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증상자가 있을 경우 입항이 어려워질 수 있어 보고를 고의로 누락했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 유럽과 아프리카, 중동 지역을 주로 들어가는 컨테이너선박 항해사 이모씨는 “항해사들은 입항 전부터 어느 나라 어느 항만이 검역이나 세관 검사가 어려운지 이런 정보를 알고 맞춰서 준비를 한다”며 “입항이 하루만 늦어져도 선박과 선사, 화주의 피해가 대단한데 마침 승선검역도 안 하고 처벌도 거의 없다시피 한 항구를 들어가는 상황에서 누가 ‘우리 선장이 직전에 고열로 내렸다’고 문제를 만들 보고를 하겠나”하고 말했다.
무른 처벌규정과 안이한 감시체계가 집단 확진 사태를 빚었다는 설명이다.
■처벌규정 강화 없이는 '소잃고 외양간' 반복
방역당국은 사건이 벌어진 뒤에야 방역체계를 정비하고 문제가 된 선박에 대한 처벌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 출항 선박을 승선검역 대상으로 관리하고 위법 선박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이다. 구상권 청구나 입항제한 조치도 검토하고 있지만 현실성은 높지 않다.
이와 관련해 정세균 국무총리는 2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이번 러시아 선박 사태는 대표적인 사후약방문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며 "상황 변화에 따라 긴장을 늦추지 않고 필요한 조치를 적시에 취해야지, 상황이 벌어지고 나서 조치를 취하는 것은 너무 늦는다"고 꼬집은 바 있다.
한편 레프트란스플로트 소속 냉동화물선 아이스크리스탈호와 아이스스트림호는 지난 18일과 21일 각각 부산 감천항에 코로나19 의심자가 없다는 보고를 하고 입항했다. 그러나 이들 선박에서 현재까지 17명의 확진자가 발생해 이들과 접촉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무원과 항만노동자 등 176명이 격리조치된 상황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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