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에게 아픈 상처를 남긴 6·25 한국전쟁이 발발한지 70년이다. 한국전쟁은 우리의 유물과 미술에도 상흔을 남겼다. 하지만 전쟁은 비극이었어도 일대의 전환점이었고, 상처였지만 반성과 성찰의 시발점이었으며 수많은 교훈과 작품들을 남겼다.
■포화 속에서도 문화유산을 지켜낸 흔적들
70년 전 박물관 역시 전쟁 속에서도 고군분투했다. 불타고 부서진 많은 문화재들을 조금이나마 지켜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유물을 의도적으로 미국으로 반출해 첫 해외 순회전을 치르기도 했다. 전쟁 후엔 찢기고 깨진 문화유산들을 조금이나마 회생시키고 복원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6·25전쟁 70주년 기념 테마전 '6·25 전쟁과 국립박물관-지키고 이어가다'전에서는 이러한 선대의 노력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이 전시는 70년 전 일어난 전쟁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빠진 문화재를 지키고 문화의 맥을 잇고자 했던 국립박물관을 조명하며 국난 극복과 평화의 교훈을 공유하고자 마련됐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박물관이 휴관하는 바람에 25일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 온라인 전시로 개막됐다. 전시는 총 2부로 진행된다.
통일신라 애장왕 5년인 804년 제작됐으나 한국전쟁 당시 불에 타 깨어진 '선림원지범종편'
6.25 전쟁 때 깨어진 조선시대 청화백자 용 항아리 /사진=국립중앙박물관
1부 '위기에 빠진 우리 문화재'에서는 6·25로 인해 수난을 당했던 문화재들이 소개됐다.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 보관되다 1951년 1월 전쟁 중 월정사가 불타면서 함께 녹고 비틀려 깨어진 '선림원지범종편'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조선시대 숙종 32년인 1706년 백두산 부근을 그린 '요계관방지도'엔 군화 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는 등 유물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돌아볼 수 있다. 2부 '문화를 지키고 세계에 알리다'에서는 1950년 12월 부산으로 옮긴 국립박물관이 피란지에서도 한국 문화를 지키고 이어가기 위해 벌였던 노력을 조명한다. 국립박물관의 이전을 승인한 당시 문교부 장관의 허가서, 부산 박물관 임시청사의 내부 평면도, 1953년 전쟁 중에도 국립박물관이 발굴했던 경주 금척리 고분, 노서리 138호분 출토 토기들이 전시됐다.
또 국립박물관이 주최했던 1953년 제1회 현대미술작가초대전, 이조회화전 관련 자료들도 선보인다. 현대미술작가초대전에 김환기가 출품했던 작품 '돌'과 그가 자필로 쓴 설명카드가 함께 전시됐다. 전시에 문화재 보호를 위해 미국으로 반출됐던 보물 제339호 서봉총 금관과 고려말기의 관세음보살상은 1957년, 최초의 한국 문화재 해외순회전 '마스터피스 오브 코리안 아트'에 전시품으로 세계에 소개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유물들과 당시의 도록이 함께 공개됐다.
미군이 구해낸 관세음보살 /사진=국립중앙박물관
한편 테마 전시장 바깥 상설전시실의 전시품 중에서도 전쟁의 상흔을 입은 유물들을 만날 수 있다. 국보 제3호인 '북한산 신라 진흥왕순수비'의 오른편엔 총알 자국이 선명하고, 전쟁 당시 개성 박물관에서 남한으로 피난 내려온 국보 제60호인 '청자 사자 모양 향로'도 만날 수 있다. 전시는 9월 13일까지.
■전쟁·재난을 통해 평화를 모색하는 미술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쟁 당시의 흔적과 과거의 역사를 재조명했다면, 국립현대미술관은 '낯선 전쟁'전을 통해 전쟁으로 인해 영감을 받은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25일 개막한 이번 전시에는 한국전쟁 참전 종군 화가부터 동시대 국내·외 작가 50여명의 작품 250여점을 비롯해 군 의문사를 주제로 한 퍼포먼스 등 신작 10점이 공개됐다.
김환기 '판자집'(1951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전시는 총 4부로 구성됐다. 1부 '낯선 전쟁의 기억'에서는 전쟁세대의 기억 속 한국전쟁을 소환한다. 김환기·우신출 등 종군화가단의 작품과 김성환·윤중식의 전쟁 시기 드로잉, 김우조·양달석·임호 등의 작품 등이 공개됐다. 한국전쟁 참전 군인이었던 호주의 이보르 헬레와 프랭크 노튼, 캐나다의 에드워드 주버는 전쟁 당시 상황을 그린 작품들을 디지털 이미지로 공개했다. 당초 실물 작품이 전시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작품 반입이 어려워지면서 국내에 들어오지 못했다.
이동표 '일인이역 골육상잔'(2000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2부 '전쟁과 함께 살다'에서는 남북분단으로 인해 야기된 사회문제들에 주목한 작품들이 전시됐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예술학도에서 군인, 포로, 실향민으로 살게 된 경험을 그린 이동표의 작품을 비롯해 전후세대 작가들의 작품이 함께 배치됐다. 세계적인 무기박람회장이 가족 나들이 장소가 된 역설을 담은 노순택의 2008년작 '좋은, 살인'과 평생 북한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할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관찰한 한석경의 2019년작 '시언, 시대의 언어', 컴퓨터게임처럼 가상화된 공간에서 전쟁의 폭력성을 탐구한 김세진의 신작 '녹색 섬광' 등이 전시됐다.
아이 웨이웨이의 2017년작 '여행의법칙'(가운데)과 신작 '폭탄'(오른쪽 벽), 2016년작 '난민과 새로운 오디세이' /사진=국립현대미술관
3부 '인간답게 살기 위하여'에서는 전쟁으로 우리가 잃어버린 것과 훼손된 가치를 짚어본다. 2011년 중국 정부에 의해 구금 생활을 하는 동안 난민이 처한 상황을 다양한 매체로 알려온 아이 웨이웨이의 신작 '폭탄'과 2017년작 '여행의 법칙', 2016년작 '난민과 새로운 오디세이'는 이번 전시의 백미다. 이 밖에 분쟁지역 내 여성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삶을 다룬 터키 작가 에르칸 오즈겐의 '보랏빛 머슬린' 등도 공개됐다.
4부 '무엇을 할 것인가'는 새로운 세대와 함께 평화를 위한 실천을 모색하는 활동을 소개한다. 안은미는 군 의문사 유가족과 함께 진행했던 전작 '쓰리쓰리랑'에서 출발한 신작 '타타타타'를 선보인다.
디자이너와 예술가들로 구성된 그룹 도큐먼츠는 한국전쟁 당시 배포된 '삐라' 중 '안전 보장 증명서'를 2020년 버전으로 제작해 선보인다. 전시는 9월 20일까지.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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